합의가 나온 지 어느덧 한 달이 지났다. 인터넷사이트를 통해 우리 단체에 새로 가입한 사람도 적지 않다. 어떤 사람은 우리 단체의 인터넷 사이트 전쟁납북자 명단에서 부친의 이름을 발견하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전해왔다. 그러나 정작 이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우리 정부의 움직임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어 답답하다. 우리 가족들의 기대만 한껏 부풀려 놓았을 뿐,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지에 대해서는 어떤 설명이나 협의도 없었다.
분단 반세기 만에 귀중한 합의를 이뤄냈다면 우리 정부라도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발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8월 말 제2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 합의한 쌀 비료 지원사항은 그로부터 2주도 채 되지 않아 이행이 시작됐고, 이달 들어서도 포항에서 비료를 실은 배가 청진항으로 떠나는 등 북한에 줄 것은 신속히 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어째서 국민의 생명보호 의무와 인도주의 사안에 대해 우리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이번 합의 역시 대북 지원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남북한 당국이 우리에게 내놓은 당의정에 불과하단 말인가.
언론에 발표되고 있는 전쟁납북자 및 행방불명자의 추정치부터 들쭉날쭉하다. 정부에서 근거자료를 수집해 공신력 있는 판단을 내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일례로 대한민국 정부 작성 1952년도 ‘6·25사변피랍치자명부’(책5권)에는 전국 8만2959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1953년 대한민국통계연감에는 8만4532명으로 돼 있다. 정부가 작성한 전국명부 외에도 6·25전쟁 납북자 관련 명부는 4가지가 더 있다. 전쟁 중이었던 1950년 12월 1일 공보처 통계국에서 급히 작성한 ‘6·25사변 서울시 피해자 명부’에는 서울에서 피살 행불자와 함께 납치된 사람 2438명의 명단이 있다.
납북자들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부 당국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우리 단체는 얼마전 통일부 장관을 면담했는데 우리 활동이 이른바 남북화해와 지원활동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속마음을 확인하고 섭섭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정부로서는 ‘납북’이라는 용어 자체를 쓰기 어렵다고 난색을 표하니 직접 ‘납치사과’를 받아낸 일본에 비해 굴욕스러운 것이 아닌가.
전쟁납북자 문제는 지금이 아니라도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정권교체기라는 변명은 거두고, 남북한 통합과정의 역사적 과업이라는 관점에서 시급히 국가적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미일 6·25전쟁납북인사가족협의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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