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생활 기반 붕괴▼
정치권이 이 모양이니 일반 시민도 다를 수 없다. 공직기강 해이에 편승한 사회 각 분야에서 탈법 불법이 판을 치고 무질서가 일상화되고 있다. 노래방이 단란주점으로, 안마소가 증기탕으로 변칙 운영되고 있고 밤이면 주차질서가 사라지지만 이를 단속하는 공무원은 없다. 설령 있더라도 ‘당신부터 지켜라’는 반발에 무력해지고 있다. ‘법 지키면 나만 손해’라는 무법 신드롬이 일반 서민에게 너무나 넓게 퍼져 있다.
여기에 방만한 천문학적 공적자금과 공공자금의 방출은 국민의 민생경제마저 어렵게 하고 있다. 일부지역 아파트 가격의 폭등, 주식시장의 폭락, 대기업 투자 동결 및 신입사원 채용 동결 등은 일반 서민의 생활기반마저 붕괴시키고 있다. 이처럼 정치권과 사회 및 경제 등 모든 분야에서의 법 실종과 무정부상태의 확산은 국민 모두를 힘들게 하고 있다.
국정표류는 대통령과 공직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정치권이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야권의 동의가 없는 햇볕정책의 무리한 추진과 ‘파격적인 인사’를 통한 국무총리 서리제의 강행, 특정지역 인사 중심의 공직운영으로 인한 공직사회의 균열과 직업공무원제의 정치화, 사생결단식의 정권 재창출 집착으로 인한 야권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캠페인 전략과 대선 정국에서의 흑색선전 난무, 이에 대한 야권의 생존을 위한 폭로전 대응 등은 국정의 기반인 정치기조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들이다.
이러한 유동적인 정치권력에 민감하게 대응하는 고위 공직자들의 줄서기와 보신 행태는 공직사회를 편가르게 하고 무기력하게 했다. 이는 일반적인 정권 말기 현상인 레임덕의 대표적인 행정공백 상태를 확산시키고 사회 전반에 ‘법이 없는 현상’을 심화시키고 있다. 이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정치권은 물론 언론과 시민단체, 그리고 일반 시민이 법을 바로 세우고 국정 표류를 막는 일에 함께 나서야 한다.
첫째, 대통령은 오만과 정권 재창출의 집착에서 벗어나 국정 최고 책임자의 중립성을 보여 대선후보들의 신뢰를 되찾아야 한다. 정권의 업적은 묻히고 비리는 파헤쳐지며 서로 먼저 많이 밟고자 하는 대선 국면에서, 대통령의 퇴임 이후 안전과 차기 정부의 안정을 위해서도 김대중 대통령은 ‘나를 버리는’ 공정함과 중립을 회복하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검찰과 정부 각 부처는 엄정 중립의 입장에서 본연의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해야 한다. 특히 검찰과 경찰은 ‘신병풍’과 ‘4억달러 관련 사건’ 등을 공정하게 수사하고 신속하게 그 결과를 발표해 의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다른 정부 부처는 ‘줄대기’나 새로운 일을 벌이기보다 기존 정책을 마무리하고 일상 업무에 치중해 법치행정의 안정성과 계속성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생산적 차기정부 세워야▼
셋째, 각 정당은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안정된 정책 대결을 전개해 차기 정부를 준비해야 한다. 선거공영제를 확대해 후보간 정책 차별성이 부각될 때 국민은 후보와 정치권을 신뢰하고 공직사회나 경제 및 일반사회도 안정될 것이다.
넷째, 언론과 시민단체들은 정부나 정치권이 하지 못하는 국정 표류의 감시자가 되어 국가공동체의 이익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되어야 한다. 그들 스스로 편가름이나 정치참여에 앞장서서는 안 되고, ‘국가 지킴이’의 역할을 성실하게 자임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1부 입법, 2부 사법, 3부 행정이 모두 실패할 경우라도 이를 대체할 제4부와 5부인 언론과 시민단체에 대한 기대가 남는 것이다.
이제 모두가 나서 국정 표류를 막고 정책 대결을 통해 생산적인 차기정부를 탄생시켜야 할 때이다.
김석준 이화여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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