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크게 히트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는 제작사측에 수십억원의 수익을 안겨줬지만 이 영화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수혜자가 또 있었다. 그가 누군지는 영화에서 북한 병사로 분한 송강호가 이렇게 말하는 장면을 떠올리면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내 소원은 공화국이 남조선보다 더 맛있는 과자를 만들어내는 거야.”
이 장면에서 그는 오리온 초코파이를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이 초코파이의 매출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게 제과회사측의 설명이다. ‘영화는 이제 배우들만의 경연장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데 주저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자본주의 기업들은 스크린에서 ‘상품 선전의 장’으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그것도 보는 사람을 몰입케 하는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서 상품들을 소비자의 무의식 속에 각인시키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임을.
‘부시맨’이 하늘에서 떨어진 빈 코카콜라 병을 들고 신기해하는 장면을 기억하는가. 영화 ‘피아노’에서 여자 주인공이 스산한 바닷가에서 연주하던 피아노의 상표가 야마하였음을 알아차린 영화팬들은 얼마나 될까. 82년 개봉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에서 주인공 소년이 물고 나온 초코바(개봉 석 달 만에 이 초코바의 매출액이 66%나 늘어났다)는 또 뭐였을까.
이런 모든 것들이 과연 우연의 산물일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영화 제작 이면의 기업-영화의 합작 시스템에 대해 눈치를 챈 관객임이 틀림없다.
영화에 등장하는 기업의 상품은 관객들의 무의식 속에 침투해 상품이미지를 심는다. 보는 사람들에게는 광고라는 인식을 주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상품을 광고하는 것이다.
많은 영화팬들은 실베스터 스탤론의 출세작 ‘록키’를 권투영화로만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기업의 마케팅 담당자들에게 이 영화는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 영화에서 록키가 즐겨먹던 아침식사는 켈로그의 시리얼이었다. 전적으로 이 영화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날마다 세계인의 아침 식탁에 켈로그의 시리얼이 올라오고 있는 것에는 이 영화도 큰 몫을 한 것으로 많은 마케팅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휴대전화가 전 세계에 확산된 것도 영화를 통해서였다는 얘기가 있다.
소니의 컬럼비아사 인수에 대해 하드웨어 수출에 한계를 느끼기 시작한 일본이 자국 문화의 확산을 통해 새 수요를 창출하고자 한 전략으로 풀이했던 것도 같은 맥락에서 설득력 있는 해석이었다.
이쯤 되면 영화 속의 상품은 판매 마케팅 차원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아예 새로운 수요 자체를 창출해낼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모든 영화가 다 기업들로부터 환영받는 것은 아니다. 한국 공포영화 ‘폰’이 휴대전화가 살인에 이용된다는 설정 때문에 휴대전화 업체(011)에서 퇴짜를 맞은 것처럼.
그러나 아무려면 이런 경우보다야 더하겠는가. 한국의 내의 제조업체들은 프랭크 카프라라는 미국 감독과 같은 시대에 살지 않은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듯하다.
이 감독이 만든 1940년대 코미디 영화인 ‘어느날 밤에 생긴 일’은 가출한 상속녀가 우연히 실직중인 신문기자(클라크 게이블)와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이다. 영화는 게이블과 여자주인공이 그레이하운드 버스를 타고 영화 배경이 된 대공황기 미국의 시골을 달리면서 겪게 되는 해프닝을 그린다. 당대 최고의 인기배우들이 출연한 영화답게 흥행실적도 대단했다.
그러나 영화 속 한 장면 때문에 이 작품은 미국 내의업자들에겐 ‘악몽’이 됐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으로 당시 남성의 표본이었던 클라크 게이블은 많은 남성들이 입던 조끼 모양의 내의를 입지 않았다. 그 후 남자 내의 판매량은, 이 영화 때문이라는 확증은 없지만, 40%나 줄어들었다고 한다.
이명재 기자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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