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말 지방 소도시의 작은 초등학교. 4학년짜리 사내아이가 학교 운동장 옆에 세워진 게시판을 뚫어져라 들여다보고 있다. 또래의 개구쟁이들이 흙먼지 일으키며 뛰어 다녀도, 쿡쿡대며 장난을 걸어도 소년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련이 발사한 우주선이 지구를 돌았다’는 내용이 소년의 마음을 온통 빼앗은 것이다. 그 뒤 우주선 타고 미지의 공간을 누비는 공상과학만화에 빠졌던 소년은 어른이 됐고, 다음달에는 드디어 자신의 손으로 만든 로켓을 하늘로 쏘아 올린다.
‘로켓은 삶의 전부이며,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삶은 성공했다’고 말하는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채연석(50) 선임연구부장(사진). 그가 로켓의 모든 것을 담은 책 ‘로켓이야기’(승산)를 내놓았다. 대학 재학 중 이미 ‘로케트와 우주여행’이란 책을 펴내기도 했으니 로켓에 대한 첫 ‘애정고백서’는 아닌 셈.
“로켓만이 지구를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를 인간에게 제공해 줍니다. 21세기에는 우주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뤄질 겁니다. 우리나라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전망이구요. 그동안 꾸준히 수집했던 자료를 바탕으로 로켓에 대한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과학자로서 우리가 하는 일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지요.”
‘로켓이야기’에서 그는 로켓의 시조로 일컬어지는 중국의 ‘화전(火箭)’, 고려의 ‘신기전(神機箭)’으로 시작해 러시아 미국 등 우주항공 선진국이 우주발사체 로켓을 개발하는 과정, 우리나라의 현대 로켓 및 우주개발사 등을 쉽고 재밌게 풀어 설명한다.
초등학교 시절 접한 우주선 이야기는 그로 하여금 로켓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촉수를 가져다 주었다. 중학 시절에는 외국에서 개발된 로켓에 대한 책과 자료를 찾기 위해 늘 도서관에서 살았고, 고등학교로 진학해서는 과학전람회에 출품하기 위해 로켓 만드는 동아리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로켓은 그에게 기쁨과 두근거림만을 주지는 않았다. 제작실험 중 일어난 폭발 사고가 한쪽 고막을 가져가 버린 것. 폭발도 로켓에 대한 열정만은 날려보내지 못했다.
경희대에서 기계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미시시피 주립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지금은 11월 발사되는 순수 국내기술의 로켓 ‘KSR-Ⅲ’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어제까지도 꿈이라 여겨졌던 것들이 오늘은 희망이 되고, 내일은 실현될 수도 있는 겁니다”라는 미국 로켓의 아버지 로버트 고다드의 말은 그의 인생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람마다 능력에 차이는 있겠지만 얼마나 많이, 오래 연구하느냐가 훌륭한 과학자가 되는 성패를 가른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뛰어난 천재도, 특별한 사람도 아니지만, 할 수 있는 한은 로켓 연구에 힘을 쏟을 겁니다.”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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