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태평양이 펴낸 ‘광고로 보는 한국 화장의 문화사’는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추구를 ‘화장품 광고’라는 렌즈를 통해 읽어내고 있다.
화장품 발달사와 궤적을 함께하는 광고가 한국에 첫선을 보인 때는 1920년대. 당시부터 현재까지 이 책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미(美)에 대한 욕구와 기준의 바뀜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요즘 말로 피부 색깔을 밝게 해주는 ‘화이트닝’ 기능이 탁월했던 한국 최초의 화장품 ‘박가분’. 하지만 이 기능은 중금속 ‘납’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중세 시대 유럽 귀부인들이 납중독으로 얼굴이 ‘푸르스름하게’ 썩었던 일들이 남의 나라, 옛 이야기가 아니었던 셈.
제2차 세계대전의 끝자락, 생활의 궁핍함이 극에 이르렀을 무렵에도 화장품 광고는 존재했다. 다만 당시 한국을 강점한 일제가 전쟁을 벌이고 있었던 만큼 ‘결전하 근로여성의 건강미에는 반드시 영양크림으로’라는 카피에서 보듯 전쟁의 그림자가 곳곳에 배어 있었다.
광복과 더불어 잠시 움츠리던 화장품시장은 그 뒤 경제개발 속에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1960년대 말 현대적 의미의 ‘메이크업’ 제품들이 구색을 갖추기 시작했고 80년대 컬러TV의 보급은 ‘색감의 전성시대’를 낳았다.
첨단 기술의 적용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983년부터 불어온 생명공학 바람은 화장품에도 많은 변화를 잉태했다. 조직배양, 발효 등 실험실에서나 쓰던 용어들이 자연스럽게 화장품 생산현장에 사용됐고 당시 광고에는 이런 현실이 고스란히 투영됐다.이제 화장품은 피부에 침투해 피부를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늙은 피부를 젊게 만드는 수준의 ‘신의 영역’까지 진입을 시도하고 있다.첨단 과학 뿐 아니라 사회 변화, 특히 여성 의식의 변화가 화장품 개발에 끼친 영향은 컸다. 여성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에 진출한 90년대, 주요 화장품 메이커들의 광고는 ‘활동하는 여성’의 이상적 라이프 스타일을 제시하면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태평양 관계자는 “90년 이후 화장품 광고에 미 뿐 아니라 휴머니즘이 담기기 시작했다”면서 “육체 뿐 아니라 정신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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