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선교의 농구에세이]1m78 ‘꼬마 가드’ 의 힘

  • 입력 2002년 10월 28일 18시 58분


《본보는 2002∼2003프로농구 시즌동안 방송인 한선교(43)씨의 칼럼 ‘한선교의 농구 에세이’를 연재합니다. 1995년 농구대잔치 시절부터 중계방송 마이크를 잡은 한씨는 프로농구가 열리는 날엔 만사를 제치고 경기장을 찾는 농구 마니아이기도 합니다. 그의 해박한 이론과 감칠 맛나는 농구 이야기가 매주 화요일마다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지난 시즌 부천 체육관에서 열린 동양 오리온즈-SK 빅스와의 경기 때 일이다. 한 4∼50세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나는 그저 TV에서 본 듯한 나를 반기는 것쯤으로 생각하고 눈인사만 하고 지나치려는데 “저…,제가 승현이 엄마예요” 하시는 거다. 그래서 나는 그 분을 다시 보며 “얼마나 좋으세요”하고 인사를 드렸다. 지금 생각해도 승현이 어머니는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다. 부산아시아경기 중국과의 결승전에서 그의 귀신같은 플레이를 본 뒤부터는 더욱 그렇다.

그의 혼을 빼는 묘기를 보기 위해 프로농구 시즌 개막을 손꼽아 기다려 왔다. 그는 역시 실망시키지 않았다. 삼성과의 개막전에선 시선이 미처 따라갈 수 없을 만큼 빠른 속공으로, 둘째날 SBS와의 경기에선 두 세명의 수비를 순식간에 뚫고 나가는 드리블과 절묘한 어시스트로 시종 관중을 압도했다. 상대 응원단도 그에게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다.

SBS와의 경기 때다. 공격에 나선 김승현은 왼쪽 구석으로 보지도 않고 공을 던졌다. 특유의 노룩 패스. 그러나 거기엔 동양 선수가 아무도 없었고 공은 밖으로 나가버렸다. 김승현의 실책인가.

그러나 그는 화가 난 듯 얼굴을 찡그렸다. 순간 멋적고 미안한 표정으로 다가와 그의 엉덩이를 두드리며 달래는 선수가 있었다. 바로 김병철이었다. 김병철이 누구인가. 개성 강하기로 유명하고 자신감이 지나쳐 때로는 감독의 지적도 모른체 해버리는 그가 아닌가. 그런 김병철이 새카만 후배 김승현의 눈치를 보다니…. 그러고 보면 승현이도 많이 컸다. 잘못을 솔직히 시인한 김병철의 성숙함도 보기 좋았고.

시즌 개막 이후 이틀 연속 2만이 넘는 관중이 농구장을 찾았다. 지난 일요일 안양 체육관에 왕년의 여자국가대표 전미애(국가대표 배구팀 신치용 감독 부인)씨가 여고농구에서 한창 줏가를 올리는 딸과 함께 앉아 있었다. 전씨가 딸에게 말했다. “김승현은 자기가 마음먹은 대로 패스를 다 할 수 있어”.

그렇다. 바로 그게 1m78의 ‘꼬마 가드’가 프로농구를 평정할 수 있는 힘이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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