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씨는 “결국 내가 하는 작업의 중심이 ‘사람’인데, 사람은 곧 관계의 문제다. 색깔 역시 마찬가지다. 같은 빨강이라도 노랑과 대비할 때, 파랑과 대비할 때 느낌이 다르다. 나는 색깔들의 관계 속에서 삶을 본다”고 말했다.
그의 색은 ‘대기를 투과하는 투명한 빛이 아니라 내부에서 끓어오르는 응어리같은 색’(유준상 서울 시립 미술관장)이다.
자신만의 색깔을 만드는 그에게 빨강은 그만의 빨강이며 노랑도 그만의 노랑이다. 그러나, 정작 색의 창조를 통해 그가 천착하는 주제는 ‘탈아’(脫我·off self)다. ‘아’가 빚어내는 세계가 ‘탈아’인 셈이다. 삶의 묘한 역설을 느끼게 한다.
그는 작품의 연상을 주로 자연에서 얻는다고 한다. 여행지의 풍경도 그녀에게는 색으로 각인된다.
노란 하늘을 이고 빨강색 사각형이 굳건한 바탕을 토대로 연이어 늘어 선 ‘off self’(1995)도 작품을 끝낸 직후 방문한 스페인의 바위 산과 똑같아 스스로 깜짝 놀랐다고 한다. 더구나 스페인 국기가 노랑과 빨강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더 놀랐다고 한다.
그는 아이 둘을 키우며 주부, 어머니, 전업작가라는 1인3역의 길을 걸어왔다. 50줄을 훌쩍 넘어선 지금에서야 겨우 한숨 돌리고 있다는 그녀는 ‘지난 삶은 투쟁 그 자체였다’고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 여유 뒤켠으로는 그림 그릴 에너지가 남아 있을 때까지 더 열심히 그려야겠다는 조바심도 있다.
스스로를 외로운 작가라고 말하는 그는 외로움이 현재를 일깨우는 힘이라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보다 외국에서 더 인기 있는 그의 작품전은 11월4∼27일 뉴욕 한국유엔대표부 갤러리에서 열린다. 2001∼2002년 제작한 대작과 소품 등 50여점이 전시된다. 뉴욕의 한국유엔대표부는 건물 1층에 전시공간을 마련하면서 이번에 홍씨 초대전을 최초로 연다. 212-439-4050.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