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홍찬식]꿈★은 사라지고

  • 입력 2002년 11월 1일 18시 14분


프랑스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문화 국가’다. 프랑스 정부도 1959년 문화부를 신설하면서 ‘문화 국가’를 구호로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요즘 이런 이미지를 부담스러워하고 있고 여기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다. 우리 생각으론 ‘문화 국가’가 꽤 자랑스러운 칭호 같은데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화가 유난히 부각되다 보니 다른 분야의 국가이미지에서 큰 손해를 본다는 게 프랑스의 고민이다. 프랑스는 지난번 라팔 차세대전투기 수입 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과학기술 분야도 세계 정상급인데 대외적인 이미지는 별로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나라마다 얼마나 이미지를 중시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비리 국가´와 ´무대책 국가´▼

우리에게 국가이미지라면 지난 월드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순간 우리는 온 국민의 단합된 힘을 확인하고 꿈에 부풀었다. ‘월드컵 4강’의 성적과 질풍노도 같았던 응원 열기를 디딤돌 삼아 월드컵이 끝난 이후에도 우리 이미지가 크게 높아질 것이라고…. 월드컵 당시에 이 사실을 추호도 의심하는 국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월드컵이 끝난 지 4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에겐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안타깝게도 그때 그 질서정연함과 폭발적인 힘이 어디로 사라져 버렸는지, 마치 마법사의 손동작 하나에 마법이 풀려버리듯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것 같다. 관중석이 텅빈 채 썰렁해져 버린 요즘의 축구경기장 모습을 보는 기분이다. 그 이유는 월드컵 이후 국가이미지에 해가 되는 일들이 너무도 많이 일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거액을 챙긴 아들들의 비리로 대통령이 국민 앞에 사과를 하는가 하면, 권력 주변의 비리에서부터 한갓진 시골 군수의 부정부패까지 웬 비리는 그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월드컵이 끝나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 말이다. 게다가 일은 잘못해 놓고 웬 거짓말은 그렇게 잘 꾸며대는지. 외국인이라면 누가 보아도 ‘비리 국가’ ‘거짓말 국가’라는 소리가 당장 튀어나올 법하다.

무방비 상태에서 속절없이 당했던 수해는 ‘재해 국가’의 이미지를 널리 각인시켰다. 자고 나면 오르는 아파트값 광풍으로 인해 건전한 노동의 가치가 빛을 잃는 ‘투기 국가’로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데 이어, 몇십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사라져 버렸으니 국민이 그 뒷감당을 해야 하는 ‘무대책 국가’가 아닐 수 없다. 제발 남들이 모르고 지나갔으면 하는 이 같은 소식들은 지금도 실시간으로 해외에 전해지고 있다.

우리 이미지에 절대 도움이 안 되는 것이 북한의 존재다. 우리는 통일을 외치면서도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북한과는 다르다는 생각을 해오고 있다. 남북간 문화의 이질화가 상당히 진전됐고 단절의 벽이 오래 지속되어온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한을 뿌리가 같은 형제국가 정도로 여기지만 외국인들이 그렇게 생각해 줄지는 의문이다. 그보다는 같은 나라인데 잠시 갈라져 있는 것으로 보기 십상이다. 이런 북한이 미국 대통령에게 ‘악의 축’으로 지목되고 일본 총리로부터 ‘정말 잔인한 나라’라는 말을 듣고 있는데 과연 우리의 이미지에 영향이 없을 수 있겠는가.

김대중 정권의 말기가 어두운 만큼 새로운 대통령을 통해 뭔가 반전을 바라는 기대를 버릴 수가 없다. 21세기 한국을 이끌 새 대통령은 이전 대통령과는 다른 신선한 발상과 비전, 그리고 리더십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후보들 중에는 우리의 미래를 마음놓고 맡길 만한 지도자가 선뜻 눈에 띄지 않는다.

▼믿음 안가는 대통령 후보들▼

TV카메라 앞에서 웃는 후보들의 얼굴에는 국민을 생각하고 걱정하는 마음보다는 권력을 향한 욕심이 도드라져 보이고 이런 후보들이 대통령이 된들 얼마나 나라를 잘 이끌까 회의만 깊어진다. 선두를 달리는 후보의 지지율이 30%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실이 이런 국민의 미덥지 않은 심정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월드컵의 꿈은 이대로 사라지는가. 모두가 한목소리로 외쳤던 대한민국의 새로운 이미지 구축은 진정 불가능한 일인가. 늦가을 날씨만큼이나 어둡고 스산한 마음이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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