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철학의 고향을 찾아서] ⑤ 한구관과 노자

  • 입력 2002년 11월 3일 18시 11분


노자는 중국 허난성(河南省) 서북지역의 요로를 가로막고 있는 한구관(函谷關)에 ‘도덕경’을 남기고 떠났다.링바오〓김형찬기자 khc@donga.com

노자는 중국 허난성(河南省) 서북지역의 요로를 가로막고 있는 한구관(函谷關)에 ‘도덕경’을 남기고 떠났다.링바오〓김형찬기자 khc@donga.com

“一夫當關, 萬夫莫克.”(일부당관 만부막극·혼자서 지켜도 만 명이 이겨낼 수 없다.)

중국 허난성(河南省) 서북지역, 동쪽의 중원으로부터 서쪽의 산시(陝西)지방으로 통하는 길을 가로막고 서 있는 한구관(函谷關·허난성 링바오시)에는 이렇게 자신만만한 문구가 새겨져 있다. 바위인지 흙인지 구분도 안 되는 흙바위 산에 둘러싸인 곳, 깍아지른 듯한 골짜기 사이에 들어앉아 있는 그 장대한 관문 위에 올라서니 맞이하는 것은 메마른 모래바람뿐이었다.

약 2500년 전, 노자(老子)가 이곳에서 ‘도덕경(道德經·일명 노자)’ 5000자를 써서 남기고 떠났단다. 쇠락해 가는 주(周)나라를 뒤로 한 채 푸른 물소를 타고 풀 한 포기 제대로 자라지 않는 저 척박한 땅으로 갔다.

천연의 요새인 한구관은 사연이 많은 곳이다. 전국시대 중엽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의 초청으로 진나라에 갔다가 위기에 빠진 제(齊)나라 맹상군(孟嘗君)은 닭 울음 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흉내를 잘 내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한구관을 빠져나왔다. ‘계명구도(鷄鳴狗盜·천한 기능을 가진 사람도 때로는 쓸모가 있다)’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이런 편법을 쓰지 않고는 빠져나오기 어려운 관문이다. 그 때 닭 울음 소리를 냈다는 언덕에는 지금도 스피커에서 닭울음 소리를 울리며 관광객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구관 옆의 ’한구관대도원(函谷關大道院)’에는 재물과 복을 비는 많은 신상(神像)이 모셔져 있다(위).물소 탄 노자상.링바오〓김형찬기자 khc@donga.com

진나라의 재상에 등용돼 엄격한 법치주의를 펼쳤던 상앙(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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