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력 저하는 중학교만의 고민이 아니다.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그 영향이 이어진다. 한국과 일본의 대학에서 학생들의 학력이 낮아 강의가 제대로 안 된다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중학교 학력 저하의 원인으로 고교 연합고사 폐지를 들지만,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간과해서 안 될 것은 초등학교 및 중학교에서 학생들의 학력 저하에 영향을 미치는 몇 가지 요인들이다.
1990년대 이후의 ‘열린 교육’과 2000년부터 시작된 7차 교육과정에서 지식보다는 지식을 생성하는 학습 과정을 중시하고 학생들의 활동과 체험을 내세웠다. 이런 교육이 학습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높이고 사고력과 판단력을 기르는 장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이는 우리 교육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이상이라 하겠다. 그러나 교육여건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거나 교육방법이 미숙할 경우, 학습 과정과 학생들의 활동이 지식 생성의 수단이 되지 못하고 그 목적이 돼 버릴 우려가 높다. 특히 학습은 놀이적 성격을 벗어나지 못해 지식 생성 단계에 이르지 못할 위험이 크다.
7차 교육과정의 국민공통교육과정(초교 1학년∼고교 1학년)은 학생들이 이수할 기본 학력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학급당 적정 인원수, 지식의 생성 과정이 보장되는 평가, 과학적 인식이 보장되는 탐구방법 등의 교육환경을 전제로 한다. 이런 것들이 부족한 교실에서 기본 학력이 정착되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전인성의 함양 역시 기본 학력이 확실하게 정착될 때 가능하다. 기본학력 없이는 학생들의 자기실현이 사실상 불가능하고 바람직한 사회생활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수업붕괴는 교사의 권위 상실에서뿐만 아니라 교사의 역할 상실로부터도 생긴다. 열린 교육과 7차 교육과정은 학습자 중심 교육을 표방하고 있다. 교사에게는 학습 지도자보다 지원자로서의 역할이 강조된다. 그런데 교사가 교육 여건과 괴리된 채 기계적으로 학습 지원에만 임할 때는 문제가 생긴다. 학생들이 주도하는 탐구가 내실없는 탐구가 되고 이 과정에서 학력이 소리없이 붕괴할 수 있는 것이다. 방향과 초점을 잃은 교실은 상위권을 제외한 다른 학생들의 공부에 대한 관심을 떨어뜨린다. 이번 학력조사에서도 볼 수 있듯 상·하위 집단간의 학력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는 것이다.
교육제도 면에서 학습성취 기준을 명시해 학생들의 기본 학력을 정기적으로 진단하고 이를 학력을 높이는 자료로 활용해야 한다. 특히 교사는 학력의 중심변수임을 인식하고, 활동과 지식을 확실하게 구분해 지식 생성을 소홀히 다루는 일이 없어야 한다.
남경희 서울교육대 교수·사회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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