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남선녀가 만나 백년해로하는 평범한 성(性)은 재미없다? 가을 스크린에는 상식을 뒤엎고 관습의 틀을 벗어나는 성을 다룬 영화들이 넘쳐난다. 이미 상영 중인 ‘로드 무비’ ‘중독’에 이어 성을 다양한 방식으로 변주한 11월의 영화 3편을 미리 보니….
# 이브의 아름다운 키스
논란이 많은 소재인 동성애를 이만큼 시치미 뚝 떼고 천연덕스럽게 그린 영화도 드물다. 이 영화에서 동성애는 선택할 수 있는 여러 라이프 스타일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뉴욕 신문사에서 교열기자로 일하는 제시카 (제니퍼 웨스트펠트)는 완벽주의가 지나친 노처녀. 오자를 잡아내듯 데이트한 상대 남자 흉보기가 그칠 날이 없다. 반면 미술관 큐레이터 헬렌 (헤더 예르겐슨)은 가끔 스테이크를 먹는 채식주의자처럼 때로 이성애를 즐기는 레즈비언이다.
제시카는 레즈비언인 헬렌이 ‘우정이상의 만남’이라는 구인광고에 자기가 즐겨 읽는 릴케의 시구를 인용한 것을 보고 찾아간다. “다른 방식으로 살아도 행복할지 아닐지를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느냐”며 헬렌이 느닷없이 제시카에게 입을 맞춘 뒤부터, 이성애자인 제시카와 헬렌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지 실험이 시작된다.
두 사람이 레즈비언의 단계를 밟아가는 과정이 빚어내는 유머와 끝없는 수다는 이 영화를, 어쩌다보니 둘 다 여자였을 뿐인 커플의 로맨틱 코미디로 보이게 한다. 서로 욕망의 수위가 다른 커플의 갈등, 나와 다른 사람을 받아들인다는 것에 대한 위트있는 성찰은 이 영화를 가벼운 코미디와 구별해준다. 제시카와 헬렌 역을 맡은 두 여배우는 연극 극본을 함께 써 97년 뉴욕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려 반응이 좋자, 직접 프로듀서를 맡아 이 영화를 제작했다. 감독 찰스 허먼 윔펠트. 원제 ‘Kissing Jessica Stein’. 8일 개봉.
# 피아니스트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여우, 남우주연상 등 3개 부문을 석권한 프랑스와 오스트리아 합작 영화. 이유없는 폭력의 끔찍함을 묘사한 영화 ‘퍼니 게임’으로 알려진 독일 출신 미하엘 하네케 감독은 우아한 형식으로 포장된 이 영화에서 자기파괴의 극단으로 치닫는 중년여성의 욕망을 소름끼치게 묘사한다. 비엔나 음악학교의 존경받는 40대 교수 에리카 (이자벨 위페르)는 엄격한 피아니스트이지만 레슨이 끝나면 홀로 섹스숍에 들러 포르노쇼를 보며 오르가즘을 느끼는 기이한 취향의 여자다. 제자인 클레메(브누아 마지엘)와 에리카의 불온한 사랑, 에리카의 어머니에 대한 애증과 복수 등이 맞물리면서 이야기는 파멸로 치닫는다. 원제 ‘La Pianiste’. 29일 개봉.
# 밀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된 이후 마음 둘 곳 없이 폐인처럼 살던 전업주부 미흔 (김윤진)이 동네 의사 인규(이종원)와 불륜에 빠져들면서 다른 삶을 살게 되는 과정을 그린 멜로 영화. 감독 변영주. 8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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