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존재의 힘을 얻기 위함이었을까.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에게 국민경선 대신 여론조사로 후보단일화를 해도 좋다고 했다. 사실 노 후보로서는 승부를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여러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근소한 차이라고는 해도 줄곧 정 후보에게 밀리고 있으니까. 하기야 노 후보로서는 TV토론을 하고 난 뒤 여론조사를 하면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꾸로 정 후보는 그 점이 찜찜할 게다. 그래서인지 정 후보쪽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가 성사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여론의 힘이 막강하다고 해서 여론조사 결과까지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란 애초부터 일정한 오차를 상정하고 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전국적 규모의 여론조사에서 오차한계 ±3%에 95%의 신뢰도라면 전국의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방법으로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그 여론조사 결과가 표본조사 값의 ±3% 내에 속할 가능성이 95%라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오차범위 내의 순위란 의미가 없다. 오차한계를 어느 쪽에 유리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함정’이다.
▷같은 날 같은 사안을 묻더라도 질문의 방법이나 순서 등에 따라 전혀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실례로 최근 두 신문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한 쪽은 그렇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반면 다른 쪽은 그 반대다. 이럴 경우 ‘예’가 여론인가, ‘아니오’가 여론인가. 아무튼 게임의 룰을 정한다면 여론조사가 갖는 오차의 한계도 접고 들어가야겠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들이 여론조사로 우열을 가리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뒷맛이 씁쓸하지 않은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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