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마침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2년 교육보고서는 우리 교육의 왜곡된 현실을 실증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한국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사교육비 지출 비율이 2.7%로 30개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국가가 1% 미만이고 사교육비 지출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 일본조차 1.1%에 불과했다.
이 수치는 과외비를 제외한 것이므로 우리의 실질적 사교육비 비율은 이보다 훨씬 높을 것으로 추산된다. 반면 공교육비 지출 비율은 4.1%로 스웨덴(6.5%), 노르웨이(6.5%) 등 북유럽 국가들뿐만 아니라 헝가리(4.5%)에 비해서도 뒤졌다. 이 지표는 우리 정부가 지금까지보다 더 적극적으로 나서 과감하고 효율적인 투자와 제도개선을 통해 공교육의 기반을 굳건히 세워야 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아이를 죽음으로 내모는 과열교육의 책임은 우선은 교육정책 당국에 물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학부모들 스스로가 그것을 자초하고 있지는 않은지도 반성할 여지가 있다. 제도나 정책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학부모들의 의식이기 때문이다.
작금의 사태는 냉정하게 보아 과도한 교육열과 배타적 경쟁심으로 뭉쳐진 학부모들의 왜곡된 의식에 의해 초래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학부모들의 의식이 변하지 않는 한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지금과 같은 광적인 사교육 열풍은 그 어떤 제도나 정책 앞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오죽하면 ‘한국인들은 사막에 내버려져도 자녀 과외만큼은 시킬 것’이라는 웃지 못할 말이 나돌까.
학부모는 이제 냉정하게 자기진단을 해야 한다. ‘내 아이만 시키지 않을 수 없다’는 막연한 불안감 하나로 앞뒤 가리지 않고 아이를 사설학원이나 과외교습으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이가 받는 사교육의 질이나 효과가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다달이 교육비만 대주면 자녀교육에 대한 부모 역할을 다한 것으로 착각하며 자위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돌아봐야 한다.
아울러 자녀가 받는 과도한 사교육이 진정으로 학력신장에 도움이 되고 꼭 필요한 보충학습의 역할을 다하고 있는지도 짚어보아야 할 것이다. 자녀가 부모의 강요에 못 이겨 그저 기계적으로 사교육을 접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선행학습 위주의 사교육에 의해 자연히 학교교육에 대한 흥미를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도 냉철하게 진단해야 한다. 공교육의 부실을 비난하며 그 활성화를 외치는 학부모 스스로가 공교육을 겉돌게 해 부실 아닌 부실로 내몰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한 자성의 여지 또한 있어야 할 것이다.
이제 좀더 이성적이고 차분한 자세로 아이를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의 학부모운동이라도 일어날 때가 된 게 아닐까.
이관우 공주대 교수·독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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