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칼럼]정진홍/대선주심 선관위의 ´휘슬´

  • 입력 2002년 11월 21일 18시 45분


엊그제 쌀쌀한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찾았다. 이날은 국제축구연맹이 정한 ‘A매치 데이’였기에 도쿄에서는 일본 대 아르헨티나의 게임이 있었고, 서울에서는 우리나라와 브라질의 국가대표간 친선경기가 펼쳐졌다. 시종 박진감 있게 치러진 경기였지만 우리는 3 대 2로 분패했다. 2 대 2로 팽팽히 맞서던 경기가 종료직전 울린 페널티킥 ‘휘슬’로 일순간에 맥이 풀려버린 것이다.

이 경기를 지켜본 거스 히딩크 전 한국대표팀 감독은 ‘3류 주심’ 때문에 다 이겨놓은 경기를 놓쳤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브라질팀의 두 번째 골은 명백한 ‘오프사이드’였고, 경기종료 직전의 페널티킥도 부당하다는 것이 히딩크의 말이었다. 히딩크의 관전평에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경기에서 주심은 그만큼 중요하다. 주심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경기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홈페이지 폐쇄 시대흐름 역행▼

한국과 브라질 축구의 국가대표 친선경기가 벌어진 날, 대선 주심인 선거관리위원회는 사조직 근절이란 명분 아래 ‘창사랑’, ‘노사모’, ‘몽사모’ 등 8곳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리고 한누리산악회와 세종산악회 2곳에 활동중지명령을 내렸다. 아울러 ‘사조직’ 대표 5명을 선거법 위반혐의로 검찰에 고발하는 가히 페널티킥에 비견할 만한 초강수 ‘휘슬’을 불었다.

그러나 대선 주심인 선관위의 ‘휘슬’에 대해 세간의 견해는 엇갈리고 있다. 사조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 선거법 89조에 따른 당연한 조치로 오히려 만시지탄이라는 견해가 있는가하면, 새로운 시대변화에 부응하지 못한 채 오프라인의 법을 온라인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적용한 무리수였다는 견해도 만만치 않다.

‘돈먹는 하마’에 비견될 수 있는 오프라인상의 무슨 무슨 산악회 같은 종래의 사조직은 의당 규제되어 마땅하지만, 선관위가 “돈 안 드는 선거를 치르겠다”면서 온라인상의 인터넷 사이트 자체를 폐쇄명령조치한 것은 인터넷 사용자가 2500만명에 달하고 초고속 인터넷 가입자가 1000만명을 넘어선 시대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 물론 문제는 현실에 걸맞은 새로운 정치관련 선거법이 마련되지 못한 채, 20세기에 만들어진 법으로 21세기의 첫 번째 대선을 치른다는 데 있다.

선관위는 인터넷상에서의 비방 및 흑색선전을 뿌리 뽑는다는 차원에서 특정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지만, 특정 사이트를 폐쇄한다고 해서 인터넷에서 특정 후보에 대한 비방과 흑색선전이 없어지리라고 보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비방과 중상이 난무한다면 일단은 자율정화를 권고하고 그래도 시정되지 않으면 그때 가서 명예훼손 등에 따른 사법처리로 대응할 일이지, 인터넷 사이트 자체를 폐쇄하는 것은 자칫 또 하나의 명백한 커뮤니케이션권 침해라는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사실 어찌보면 온라인 특히 인터넷에서의 비방과 중상에 대한 가장 좋은 처방은 ‘렛 잇 비(let it be!)’ 즉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라 하지 않던가. 인터넷은 속성상 가만 내버려두면 잦아들지만 건드리면 커지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또 다른 속성은 “가두면 터지고, 막으면 확산된다”는 것이다. 20세기의 전화는 선만 끊으면 불통이지만 21세기의 인터넷은 그 속성상 폐쇄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시쳇말로 다른 방, 또 다른 사이트를 만들고 찾아내기 때문이다. ‘노사모’가 사이트 폐쇄에 반발하며 선관위 사이트에 ‘우리 집’ 짓겠다고 나선 것은 그냥 엄포가 아니다.

▼´불법´ 막자고 입까지 막아서야▼

사조직에 대한 정의도 달라져야 한다. 오프라인상에서 ‘돈’이 접착제가 되어 만들어진 전통적인 ‘사조직’과 온라인상에서의 자발적인 참여의지에 따라 형성된 ‘네트워크’를 동일잣대로 재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정치의 본질은 ‘참여’에 있지 ‘구경’에 있지 않다. “돈은 막되, 입은 열어주자”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선거관리의 정도다. 주심의 휘슬은 공정한 경기와 선수 보호를 위한 것이지만, 경기의 흐름 자체를 끊어서는 안 된다. 대선 주심 선관위의 ‘휘슬’도 마찬가지다.

정진홍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객원논설위원 atombit@net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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