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인생과도 같은 아이스하키를 다시 시작하기 위해 26일 찾은 목동실내링크. 동원 드림스 윤태웅(26)은 하얀 빙판을 보자 덜컥 겁부터 났다. 1주일 전의 ‘악몽’이 다시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들에게 “미안하다. 오늘은 안 되겠다”며 등을 돌렸다.
‘비운의 주인공’ 윤태웅. 그는 1주일 전만 해도 촉망받는 아이스하키 선수였다. 팀의 주전 수비수인 그는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돼 내년 2월 일본에서 열리는 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 출전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19일 춘천의암빙상장에서 열린 2002 강원도컵 코리아 아이스하키리그에서 자신이 슛한 퍽에 광운대 최승호(21)가 가슴을 맞아 절명한 사고는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사고 후 ‘두문불출’하던 그를 26일 어렵게 만났다.
“정말로 믿기지 않았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뒤 잠도 거의 자지 못했고 밥도 먹을 수 없었습니다. 몸무게가 10㎏이나 빠졌으니까요.”
기억하기조차 싫지만 사고 순간은 내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후회도 많았다. “차라리 내가 다쳐 경기에 나가지 않았더라면….” “승호가 상체가 아닌 다리부터 슬라이딩을 했더라면….”
아이스하키 선수를 ‘천직’으로 삼았던 그에게 이번은 두 번째 절망. 연세대 시절 선후배 관계의 갈등 때문에 3년 정도 운동을 쉰 적이 있었다. 고교 1학년 때까지 미국 시카고에서 아이스하키를 배운 윤태웅에게 국내 아이스하키 환경은 너무나 달랐다. 동원 김삼덕 감독의 권유로 선수생활을 재개했지만 6년 만에 다시 절망에 빠진 것이다.
운동을 계속해야 할까, 아니면 그만둬야 할까. 윤태웅은 당초 번민 끝에 운동을 그만두기로 마음을 굳혔었다. 후배 승호의 얼굴이 내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그의 마음을 잡아준 것은 승호의 아버지 최기식씨(56)였다.
외아들을 잃은 최씨는 25일 광운대에서 윤태웅을 만나 “절대로 운동을 포기하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자식을 잃게 한 당사자를 오히려 위로하는 최씨를 보며 윤태웅은 마음을 돌렸다. 김 감독도 “다시 스틱을 잡아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우승트로피를 최승호의 부모님에게 바쳐야 하지 않겠느냐”고 격려했다.
윤태웅은 “현실을 회피하기보다는 현실과 부딪쳐야 되겠다는 용기가 생겼다”며 “승호의 몫까지 두 배로 뛰는 게 유족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아들을 잃은 승호의 부모에게 양자 역할을 하기로 하늘에 있는 승호와도 약속했다.
윤태웅은 놓았던 스틱을 잡기 위해 27일 아침 다시 목동링크로 나간다. 참기 힘든 공포감이 또 밀려오더라도 이번엔 전처럼 도망가지 않고 정면으로 맞설 각오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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