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내가 걸어온 조사인생 35년’이라는 회고록을 낸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 김용한(金龍漢·69) 명예회장. 그의 일생은 우리나라 ‘조사(調査)’의 역사다.
소비자라는 개념조차 생경했던 시절, 그는 한국 최초의 조사회사인 ‘유신마케팅리서치’를 설립하고 시장점유율(Market Share)이란 개념을 들여왔다. 박정희(朴正熙)와 김대중(金大中)Tlrk 맞붙은 1971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는 중앙정보부가 비밀리에 실시한 한국 최초의 선거 여론조사를 맡았다. 광고 시장에 회오리를 몰고 온 매체의 구독률 열독률 시청률 조사도 그가 도입했다.
그는 1986년 현지인으로는 처음으로 세계 최대의 조사회사인 AC닐슨의 한국 지사장으로 발탁된 이후 12년간 AC닐슨 코리아를 이끌며 매출을 10배 이상 끌어올리기도 했다.
지금은 은퇴해 등산과 명상으로 소일하고 있는 그를 서울 남산의 한 클럽에서 만났다. 고희(古稀)를 바라보는 나이지만 일생을 ‘조사’에 바친 전문가답게 말 한마디에도 통계와 숫자의 ‘정교함’이 담겨 있었다.
#조사 인생 35년
그가 조사와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966년. 미국 오클라호마주 필립스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심리학 석사 과정을 밟다가 귀국해 유한양행에 취직하면서부터다.
당시 유한양행이 생산했던 ‘유한치약’은 ‘럭키치약’에 밀려 판매가 신통치 않았다. 광고국에 근무하던 그는 서울시내 600가구 가정주부를 대상으로 샘플 테스트를 실시했고, 그 결과에 따라 1년 뒤 유한양행이 치약 생산을 중단했다. 그게 조사와의 첫 인연이었다.
“유한양행은 60년대 말 ‘코텍스’라는 킴벌리사의 생리대를 판매했어요. 그때만 해도 주부들이 생리대를 쓸 만한 경제적 여유가 없어 소비자 만족도 조사를 할 수 없었지요. 궁리 끝에 호텔 나이트클럽에서 일하는 호스티스들을 상대로 조사를 했죠. 코텍스 한 보따리를 짊어지고 남대문의 그랜드호텔, 퇴계로의 아스토리아호텔로 돌아다니며 아가씨들에게 나눠주고 소감을 들었죠.”
김 명예회장은 1968년 유한양행 설립자 유일한 박사의 아들인 일선씨와 함께 ‘유신시장조사기획회사’를 차렸다. 시장조사라는 개념조차 없던 시절, 소비자 패널을 구축하고 전속 면접원제도를 도입하는 등 야심차게 시작했지만 코카콜라 등 몇몇 외국기업이 눈길을 줬을 뿐 한국 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이 170달러. 물건이 없어 못 팔던 전형적인 ‘생산자 시장(Seller’s market)’ 시절에 시대를 너무 앞서갔던 탓이다. 결국 회사는 2년 만에 자본금 3000만원만 날리고 문을 닫았다.
업자 생활을 하던 그는 1970년말 여당인 공화당측(중앙정보부)으로부터 1971년 대통령 선거에 대비한 여론조사 요청을 받았다. 당시는 조사 경험자가 국내를 통틀어 손가락에 꼽힐 정도. 그는 의뢰비 250만원에 서울시민 1000명을 대상으로 면접 조사를 실시했다.
“유신회사에 근무했던 직원들을 찾아내 팀을 만들었죠. 여론조사란 게 뭔지 모르던 시절이어서 지금에 비하면 문을 잘 열어줬어요. 당시 김대중씨가 우세할 것이라고 다들 생각했지만 조사 결과는 박정희 대통령이 약간 우세하게 나왔지요.”
#씨앗이 큰 나무가 되다
그의 본격적인 조사 인생은 1971년 미국인과 함께 ‘S/K 마켓리서치’라는 광고대행사를 차리면서부터 시작됐다. 한국시장에 진출하려는 외국기업을 상대로 시장조사를 대행하는 일이었다. 지금은 일반적인 조사 기법 중 하나인 ‘포커스 그룹 인터뷰(FGI)’가 국내에서 처음 시도된 것도 이때. 질레트의 용역을 받은 그는 서울 충무로 3가 라이온스호텔 사우나탕에 응답자를 초청해 면도를 하게 하고 소감을 받았다. 성인 남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 최초의 FGI 방식의 시장 조사였다.
족계획협회와 공동으로 실시한 가족계획실태 조사는 가장 기억에 남는 조사.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은 그는 지금은 폐광이 된 강원 태백시(당시는 삼척군)까지 들어가 성관계 횟수, 피임 여부, 남아선호사상 등에 대한 광범위한 실태조사를 했다.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도 이때 만들어졌다.
1973년 오일쇼크로 회사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그는 ‘국내 매체 실태 조사’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매스컴의 영향력을 조사한 뒤 광고 효과를 따져 광고료 책정에 사용해보자는 것.
“신문 잡지 라디오 TV 등 4개 매체의 소비자 접촉 실태를 조사해서 170여쪽짜리 책자로 만들었어요. 가격은 한 부에 15만원이었는데 기업들에 인기가 대단했죠. 73년부터 75년까지 네 번 조사했습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이던 ‘언론사 순위 발표’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순위에서 밀려난 한 신문사 사주가 부르더니 신문사 영업을 방해한다며 호통을 치더라고요.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사상이 불순하다며 간첩이 아닌지 뒷조사까지 했더군요.”
1998년 은퇴할 때까지 18년간 몸 담은 AC닐슨과는 1979년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매출액이 7억달러가 넘었던 세계 최대의 조사 회사인 AC닐슨이 한국시장 진출을 추진하면서 함께 일하자고 제의해 왔다. 80년부터 부사장으로 6년을 일한 뒤 1986년 AC닐슨의 전 세계 지점 중 최초로 현지인 지사장에 임명됐다. AC닐슨 지사의 손익분기점 최단시간 돌파(4년) 기록은 지금도 깨지지 않고 있다. AC닐슨 코리아는 그가 부임한 뒤 연평균 25∼30%씩 성장을 거듭했고 지금은 종업원 280명, 총매출 260억원 규모의 업계 1위로 성장했다.
#여론조사의 함정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그는 한마디로 “참 웃긴다”고 말한다. 여론조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은 조사인으로서 바람직하지만 한두 번으로는 정확한 해답을 얻기 힘든 여론조사 결과로 대통령 후보까지 결정한 것은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다.
“97년 대선에서 갤럽이 비슷하게 맞힌 것도 수십 번에 걸친 조사 때문이에요. 95%의 신뢰구간이라는 말은 100번 조사하면 95번은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예요. 한두 번의 조사, 특히 오차범위를 무시하는 조사로는 정확한 결과를 얻기 힘듭니다.”
가장 좋은 예가 김영삼 대통령의 집권 초기에 실시한 지지도 조사. 2개의 조사회사가 지지도를 조사했는데 한 곳은 지지율이 80%가 넘었고 다른 한곳은 50%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중에 알아보니까 80%의 지지율이 나온 회사는 청와대가 설문지를 만들어줬더군요. 설문 내용이나 순서 모두 중요합니다. 어린아이보고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묻는 것과 순서를 바꿔서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라고 묻는 것은 응답에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의 나이 내년이면 칠십. 희끗희끗한 머리칼만이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할 뿐 인터뷰 내내 느껴진 열정과 패기는 젊은이 그대로였다. 아직도 못다 이룬 꿈이 있는 걸까. 그는 내년부터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커뮤니케이션 리서치’를 전공한다며 환하게 웃었다.
“우연한 기회에 남이 안 하는 분야에 뛰어들었고 그렇게 35년이 흘렀습니다. 조사인은 지적 호기심이 있어야 하고 남이 알아주지 않아도 파고드는 정열이 있어야 합니다. 이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죽는 그날까지 공부를 계속할 생각입니다.”
dreamland@donga.com
김용한 회장은…
△1933년 서울 출생
△1952년 휘문고 졸업
△1960년 미국 필립스대 졸업(학사)
△1961년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 수학(사회심리학) △1966년 유한양행 시장조사과장
△1968년 유신시장조사기획회사 이사
△1971년 S/K마켓리서치 대표 △1973년 ASI마켓리서치 한국지사장 △1978년 한국화이자 마케팅부장
△1980년 AC닐슨 코리아 부사장
△1986∼1998년 AC닐슨코리아 사장
△1992년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KOSOMAR) 초대회장
△현 KOSOMAR 명예회장 겸 링크아즈텍코리아 고문
김용한 명예회장이 권하는 여론조사 재미있게 읽는법
●오차범위와 신뢰구간?〓조사 대상자의 수, 즉 표본의 크기에 따라 실제 결과가 조사 결과와 다를 수 있는 ‘오차 범위(표본 오차)’가 결정된다. 무작위 추출 조사의 경우, 95% 신뢰수준에서 최대 허용 오차는 조사 대상자 수가 1500명이면 ±2.5%가 되고 1000명이면 ±3.1%, 2000명이면 ±2.2%P가 된다.
95% 신뢰구간에서 오차범위가 ±2.5%라는 말은 같은 시점에서 같은 방법으로 100번 조사했을 때 95번 ±2.5%의 오차범위 안에서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얘기다. 예를 들어 대통령 후보 A와 B의 지지율이 각각 35%와 32.5%가 나왔다면, 오차 범위 내에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누가 앞서는지 알 수 없다. A는 32.5%∼37.5%가, B는 30%∼35%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비표본 오차〓실제 여론조사에는 통계적으로 계산 가능한 표본오차 외에 비표본오차라는 것이 있다. 이는 질문순서나 내용, 조사원의 조사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차다. 비표본오차는 조사기관의 신뢰도를 판가름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여론조사는 가로가 아닌 세로로 읽어라〓여러 조사기관이 같은 시점에 후보 지지율을 발표한 경우, 수치를 단순히 비교하기보다는 한 기관이 조사한 결과를 순차적으로 훑어내려가는 것이 여론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방법.
조시기관마다 조사 기법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단순한 수치를 비교하기보다는 조사기관별로 전체적인 트렌드(경향)를 살펴야 한다.
●무응답률이 중요하다〓선거 여론조사를 볼 때 중요한 것이 대답을 안하는 ‘무응답률’. 질문을 하는 방식과 추가 질문을 하느냐 안 하느냐, 몇번 하느냐에 따라 무응답률은 달라진다.
무응답률이 높으면 대답하는 사람이 적다는 얘기고, 전체적으로 지지율도 낮게 나온다. 선거 여론조사의 경우, 대세론이니 노풍, 정풍이니 하면서 이슈가 되는 사안이 있을 때 무응답률이 줄고 그 때의 이슈가 되는 후보의 지지율이 높아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