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00㎏이 넘는 거구를 흔들어 대며 웃어 제꼈다.
가스펠 가수 박종호(사진). 한국 복음성가 역사상 처음으로 오케스트라, 드럼, 일렉트릭 기타를 음악에 집어넣고 랩, 레게, 힙합을 섞어 가스펠 음반도 150만장 이상 팔 수 있다는 기록을 세운 사람. 올림픽 체조 경기장 공연 때에는 1만여명의 관객을 동원했고 1994년엔 가스펠 가수로서 처음 세종문화회관 공연을 가졌다.
그는 한번 '이거다' 싶으면 그 길로 직행하는 삶을 살았다. 고등학교 때 '경쟁 학교를 이겨야 한다'는 친구의 한 마디에 학교 담을 넘어 시험지를 훔치다 퇴학을 당했고 첫 눈에 반한 여자에게 청혼, 만난 지 1주일만에 식을 올렸다. 또 대학 졸업 막판에는 신학교로 직행, 여러 사람을 놀래켰고 그 신학교도 두 달 만에 그만뒀다. 좌충우돌이라기보다, 삶에서 뭔가 선택을 해야 할 고빗 길에서 그는 이성보다는 감성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고나 할까.
추첨으로 들어간 중학교가 미션 스쿨이었던 바람에 기독교 문화에 젖어 든 그는 이후 교회라는 공간에서 청소년기의 대부분을 보냈다. 그러다 대학 졸업을 세 달여 앞둔 어느 날, 한 교회 성가대 지휘를 도와 주러 갔다가 이른바 '성령 체험'을 한다.
"손만 대면 아픈 배가 낫는다든지, 부러진 다리가 고쳐진다든지,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어요. 성경을 비과학적이라고 우습게 알았던 저는 두 달여 이어졌던 신비한 경험을 통해 삶보다는 죽음 이후의 세계에 몰입하게 됐지요."
이탈리아 유학이고 뭐고 다 때려 치우고 영생의 길에 투자하자는 생각으로 신학교에 들어 간 것이다. 그는 서울대 성악과 81학번. 조수미와 동기 동창으로 4년 내내 실기 성적이 1등이어서 장차 한국을 대표할 테너로 촉망 받았던 그가 덜컥 신학교에 들어갔으니 주변 사람들의 충격이 어떠했을지 짐작이 간다. 그러나, 그 길도 오래가지 못했다.
"나는 생의 가장 중요한 것을 포기하고 여기까지 왔는데 정작 그 곳은 인생의 실패자, 아웃 사이더들의 도피공간이었어요."
그는 두달만에 신학교도 집어치우고 서울시립합창단원으로 일하면서 전도사 생활을 시작한다. 그러다 87년 극동방송 주최 복음성가 경연대회에서 대상을 받으면서 일약 유명해진다.
"93년인가 숭의음악당 첫 무대를 마치고 사인회를 하고 있는데 옆에서 '쟤 골 때린다'하는 10대들 목소리가 들려요. 그때 깨달았지요. 은혜받는 것은 저런거다. 감동이나 은혜나 다를 게 없다. 그 이후 신자뿐 아니라 비신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온갖 시도를 해 본거지요."
그는 자신의 시도에 확신을 가질수록 대중과의 소통에 더 매달렸고 그때마다 교회라는 제도와 부딪혔다. 그럴수록 싸웠고 상처받았다. 인생의 정점에 서 있었던 4년 전 돌연 '은퇴'를 선언하고 미국으로 직행할 때는 에너지를 완전히 소진한 상태였다.
"뉴저지에 가서 식당이라도 하자고 아내를 졸랐지요. 결국 바이올린 하는 큰애 공부시키면서 함께 공부를 시작했지만요."
그러나, 미국 생활 한 달만에 그에게 뜻밖에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 뇌출혈로 쓰러져 일주일간이나 혼수상태에 빠진 것. 예기치 않은 그때 일은 그를 이제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변화시켰다.
"평생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는데 처음으로 '아 내 맘대로 안 되는 것도 있구나. 내가 이렇게 약한 인간이었구나'하는 처절한 깨달음, 자책, 반성이 찾아 왔어요. 지난 세월 너무 오만하게 살았던 거지요. 기독교 문화를 이끄는 진짜 일꾼은 나뿐이고 남들은 부정했으니까요. 하나님을 믿었지만 나는 하나님을 황소처럼 끌고 다닌 셈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님이 황소에요. 나는 그저 황소가 가는 길을 따라가는 거지요. 옛날엔 내가 있음으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내가 행복함을 느끼게 됩니다."
4년이 흐른 뒤 만난 그에게 사람들은 '편해졌다' '순해졌다'는 말을 한다고 한다. 그는 진정 '낮은 자'의 목소리가 무엇인 지 깨달은 것 같다고 말했다.
돌아 온 그가 11집 음반을 내고 12월9일 저녁 7시반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귀국공연도 한다. 더욱 깊어진 그의 영성이 어떤 목소리로 울려 나올지 궁금하다. 공연문의 02-525-6929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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