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도봉구청 산업환경과 구희관(具熙官·40·사진)씨는 최근 연탄을 사용하는 관내 134가구를 돌아봤다. 대부분 노인 혼자 가난하게 사는 집으로 작년에 비해 11가구 늘었다.
4가구는 2만5000원이면 설치할 수 있는 가스 배출기가 없었으며 이 가운데 2가구는 연탄가스가 새고 있었다.
도봉구 방학2동 산 20 이주한(75) 정두례씨(74·여) 부부의 판잣집. 부엌과 방 사이에 벽도 없어 연탄가스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었다. 이들은 수입이 없지만 아들과 딸이 있다는 이유로 생활비를 보조받을 수 없어 가스가 새는 줄 알면서도 배출기를 살 돈이 없어 항상 문을 열어놓고 새우잠을 잔다.
쌍문1동 이갑례씨(72·여)는 보증금 50만원에 월세 5만원짜리 판잣집에서 혼자 산다. 이씨의 쪽방에서 새는 연탄가스 때문에 함께 사는 할머니들이 “머리가 아프다”며 불평을 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다.
이들의 어려운 사정을 직접 본 구씨는 그냥 돌아설 수 없었다. 그 자신도 연탄에 한이 맺혔기 때문.
전남 화순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자취를 하며 고등학교에 다녔던 구씨는 “아버지가 실직해 겨울에도 연탄이 떨어지기 일쑤였다”며 “어렵게 연탄을 구해 불을 피워놓으면 가스 때문에 정신이 몽롱해도 얼마나 행복한 지 몰랐다”고 회상했다.
구씨는 고교 동창모임 인터넷 홈페이지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돕자는 글을 띄웠다. 형편이 넉넉지 않은 친구들도 참여할 수 있도록 상한선을 3만원으로 정했다. 모인 43만원은 가스배출기 4개를 사고 6가구에 연탄 200∼300장은 사줄 수 있는 돈.
구씨는 7일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연탄을 전달했다. 정두례 할머니는 “구씨 덕분에 이번 겨울은 한시름 놓았다”며 눈물을 글썽였다.
현재 서울에서 난방용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집은 1만310가구. 꾸준히 줄고 있지만 강북지역의 동대문구, 은평구, 성북구 등에는 여전히 많다.
구씨는 “내년에 연탄 한 장 값이 300원에서 330원으로 오른다고 해 걱정”이라고 말했다.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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