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간부로 일하다 5년 전 퇴직한 김홍근(金洪根·53·서울 서초구 방배동)씨는 요즘 서울 지도를 펴놓고 구석구석 지리를 익히느라 여념이 없다. 16일부터 시범운행에 들어가는 ‘서울시 장애인 콜택시’ 운전사로 선정됐기 때문이다.
5.5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선정된 100명의 운전사는 대부분 이웃사랑을 실천해온 사람들. 김씨도 예외는 아니다.
7일 오후 김씨를 만났을 때, 그는 서울 강남구 삼성동 강남병원에서 암환자를 돌보고 있었다.
“장애인 콜택시는 나흘 운전하고 하루 쉰다고 하더군요. 쉬는 날엔 지금처럼 호스피스 봉사활동을 계속할 생각입니다.”
김씨가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지난해 여름. 독실한 가톨릭 신자인 김씨는 우연히 말기 암환자의 처절한 시한부 인생을 접하곤 그들을 위해 봉사하기로 마음먹었다. 3개월 동안의 병원 실습을 거쳐 서울대병원과 강남병원에서 매주 이틀씩 말기 암환자를 돌봐왔다.
환자 목욕이나 면도는 물론이고 환자나 환자 가족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밤늦게 귀가할 때도 허다하다. 또한 환자가 퇴원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집으로 찾아가 보살펴주기도 하고, 세상을 떠난 환자의 유족들까지 도와준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인지 김씨의 부인도 환자들을 위해 밥을 지어 나르고 있다.
“장애인들은 병원에 가야 할 일이 훨씬 많습니다. 그들이 외출을 하거나 급하게 병원에 갈 일이 생기면 언제든지 달려가렵니다. 또 택시를 운전하다 보면 장애인들의 집을 알게 될 테니 직접 집으로 찾아가 이런 저런 일을 도와드릴 수도 있겠죠.”
호스피스 봉사도 쉬운 일이 아닌데 장애인 택시까지 운전하게 된 김씨는 “집사람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장애인을 위해 열심히 밑반찬을 만들기로 약속했다”며 미소지었다.
“뭐 대단한 일 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미화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대신 강남병원은 서울대병원에 비해 생활이 어려운 환자가 많아서 좀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다는 것을 좀 알려주세요.” 김씨의 소박한 당부다.
휠체어 리프트를 장착한 장애인 콜택시는 1, 2급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행된다. 요금은 일반 택시의 40% 수준. 운행수익금은 연료비 휴대전화요금 차량정비비 등 차량유지관리비로 사용되고 운전사는 서울시로부터 매월 95만원을 지원 받는다. 정식운행은 내년 1월 1일부터.
이광표기자 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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