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에 베토벤과 파스칼의 석고 데스마스크가 생각이 났어요. 이건 살아있는 얼굴이니까 ‘라이프 마스크’라지. 석고를 얼굴에 바를 때 너무 차가워서 마비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니까요.”(웃음)
갤러리 한쪽, 얼굴에 석고를 바른 채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 “김정옥 문예진흥원장”이라고 귀띔해주었다.
20여분이 지난 뒤 석고를 떼어 낸 김 원장은 “예전에 헝가리에서 얼굴본을 뜬 적이 있는데 다시 해보니 새삼스럽다”며 “석고틀을 이용해 종이로 얼굴을 만든다는 데서 서양과 구분되는 동양의 미(美)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는 재일작가 김명희씨(53)의 ‘한일 라이프 마스크 프로젝트’의 최종 전시장. ‘라이프 마스크’란 사람의 얼굴을 석고로 떠내고 그 석고틀에 전통 수제지인 한국의 한지와 일본의 화지를 서너겹 붙여 떼어 낸 ‘종이 마스크’다.
19일로 대장정의 막을 내릴 이번 전시는 소설가 이문열 서영은 유현종 김승옥 최인호씨, 시인 김남조씨, 김승희 교수(서강대), ‘김덕수 사물놀이’의 김덕수씨 등 국내 문인 및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얼굴로 마무리하게 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생존 문인들의 얼굴을 보존하자고 제안해 이뤄진 일로 이들의 ‘라이프 마스크’는 전시가 끝난 뒤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에 기증될 예정이다.
김씨는 “인간은 본질적으로 평화롭고 동등하며 특유의 개성을 가진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표정과 색깔이 드러나지 않는 한지 마스크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3년동안 한 살 아기부터 88세의 할아버지까지 1080명의 일본인과 428명의 한국인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전시된 마스크는 하나 하나 각기 다른 얼굴이면서도 한 발자국 물러나 바라보면 조화롭게 잘 어우러지는 묘한 매력을 지녔다. 02-742-5480
조이영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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