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한 축구선수는 공을 찰 때 목표지점을 염두에 두고 그 방향으로 공을 보낸다고 한다.
불필요한 방향으로 공을 차면 공이 아무리 멀리 나가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논리는 창조적 상상력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상력 발휘는 그것이 특정 목표의식에 부합될 때 비로소 가치창조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표의식이란 고객의 필요와 아픔을 해소하고 기호와 정서를 만족시키기 위한 의지이다. 목표의식과 방향감각 없는 상상력은 장님 손에 들려진 도끼요, 오리무중에 좌충우돌하는 항공기와 같다.
그러나 목표의식이 현실적으로 구현(具現)되려면 구체성을 확보해야 한다. 목표의식이 구체성을 확보했을 때 우리는 이를 문제정의(problem definition)라고 부른다. 목표의식이 문제정의로 발전하여 가치창조로 이어지는 과정을 사례로 살펴보자.
#목표의식은 문제정의로 발전해야!
1970년대까지도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처절한 가난이 있었으니 배고픔 즉 보릿고개가 그것이었다. 이 가난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 우리 정부는 경제개발을 가장 중요한 정책목표로 세웠다. 이 목표를 실천행동으로 옮기려면 구체성 있는 문제정의가 필요했고, 그중 하나가 ‘단위면적당 수확량이 높은 신품종 볍씨를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정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당시 중앙정보부(오늘의 국가정보원)로 하여금 해외 특파원을 동원하여 주재국에서 수확량이 가장 높은 볍씨를 수거해 오도록 지시했다. 이렇게 수거해 온 여러 종류의 볍씨를 교배시키는 실험을 통하여 신품종 볍씨개발이 시작되었다.
일년 내내 재배실험이 가능한 필리핀 국제미작연구소(IRRI)에까지 연구원을 파견, 실험을 거듭한 끝에 1단보(300평)당 624kg의 수확을 올릴 수 있는 IR667(일명 통일벼)이 드디어 개발된 것이다.
통일벼의 성공으로 1977년에는 온 국민이 먹고 남는 생산량 4180만 섬을 수확함으로써 보릿고개가 정식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바로 그해 11월 서울의 번화가에서는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일부 소비단체가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밥을 대접하며 밥맛 평가를 의뢰한 것이다. 통일벼가 재래종 쌀에 비해 밥맛이 떨어진다는 일종의 ‘시위’였다. 굶주림에서 벗어나자 바로 ‘좋은 맛’을 추구하는 인간 속성이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수확량이 좀 떨어지더라도 맛이 좋은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야 했다.
결국 보릿고개로부터 우리 민족을 구해낸 ‘통일벼’는 새로 개발된 신품종에 자리를 내주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비운을 맞았다.
#문제정의 잘못되면 실패
목표의식을 문제정의로 전환하는 데는 상상력이 필요하고, 문제정의가 제대로 되면 문제가 반은 풀린 셈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문제정의는 중요하다. 연구소나 기술개발 현장에 가보면 목표의식은 가지고 있으나 문제정의가 잘못되어 고전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다음 사례를 보자.
1869년 수에즈 운하를 성공리에 건설, 세계적 영웅이 된 프랑스 엔지니어 페르디낭 레셉스는 1881년 다시 파나마운하 건설에 도전했다. 그러나 파나마는 열대우림 지역이어서 건설이 시작되자 황열병과 말라리아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들 질병으로부터 건설인력을 보호하기 위한 목표의식에서 레셉스는 ‘개미 퇴치’를 문제정의로 내세웠다.
개미가 침대 위로 기어오르는 것을 막기 위해 침대 다리를 모두 물그릇 속에 담가놓는 조치도 취했다. 그러나 질병은 더욱 맹위를 떨쳐 8년 동안 2만여명의 희생자를 냈고 재정파탄까지 겹쳐 레셉스는 물러났다. 뒤에 알게 된 것이지만 병을 옮긴 것은 개미가 아니라 모기였으므로 침대 다리 밑 물그릇은 모기의 번식만 도운 셈이다.
질병의 매개체를 개미라고 잘못 상상하고 내린 문제정의가 실패 원인이 된 것이다. 문제정의 단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간의 상상력은 이처럼 과오를 범하기 쉽다.
다음에 이어지는 글에서는 인간의 상상력이 가지는 불완전성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살펴보자.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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