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오바마의 학교 연설

  • 입력 2009년 9월 5일 02시 51분


미국 대통령의 학교 방문은 흔한 일이다. 현직 대통령이 학생들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대화를 나누며 일일교사 역할을 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취임 직후인 2월 초등학교를 방문해 학생들에게 우주비행사에 관한 책을 읽어주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어린 학생들은 “대통령 아저씨, 좋아하는 슈퍼 히어로가 있나요” 같은 질문을 던지며 교실로 찾아온 대통령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젊은 대통령 오바마는 책 읽어주는 역할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한 것 같다. 이번에는 학생들을 상대로 연설을 하는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오바마는 8일 워싱턴 근교에 있는 웨이크필드 고교를 방문해 자신의 장기인 연설 솜씨를 발휘할 예정이다. 연설은 인터넷과 C-Span TV로 전국에 중계된다. 백악관은 오바마가 학생들에게 공부에 대한 책임을 지고, 목표 달성을 위해 도전하고,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강조한다고 예고했다. 4일 워싱턴포스트 기사의 제목대로 학생들을 위한 ‘격려 연설(pep talk)’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미국 대통령의 학교 방문 연설에는 논란이 따른다.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1991년 한 고등학교를 방문해 “열심히 공부하고 마약을 멀리하라”고 충고하는 연설을 했다. 그때도 TV로 연설이 전국에 중계됐다. 다른 점은 당시는 민주당이 공화당 대통령의 학교 연설에 반발한 반면 이번에는 보수층이 민주당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선 것이다. 미 언론에는 “대통령이 학생들을 세뇌시키려 한다” “국민의 세금을 사회주의 이념 전파를 위해 쓰려 한다” “아프간 사태와 건강보험 개혁 혼란으로 지지율이 46%까지 떨어진 오바마의 만회 전술이다”는 등의 원색적인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보수파들은 오바마의 학교 연설을 정치 개입으로 몰아가고 있다. 비난이 거세지자 백악관은 연설문을 하루 전에 공개해 학교와 학부모들에게 검토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런 다음에 학생들의 연설 시청 여부를 결정하라는 것이다. 예고된 오바마의 연설 내용도 이념이나 현실정치와는 거리가 멀다. 전교조 교사들이 학교를 이념선전과 정치투쟁의 장으로 이용하는 우리의 현실과 비교하면 아주 사소한 갈등처럼 보인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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