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문재완]교수 정운찬, 국무총리 정운찬

  • 입력 2009년 9월 16일 02시 56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로스쿨 교수였다. 1992년부터 2004년 상원의원이 될 때까지 12년간 시카고대 로스쿨에서 헌법 등을 가르쳤다. 신자유주의학파의 메카 시카고대에서 인권을 중시하는 오바마 교수의 강의는 의외로 학생들에게 인기였다. 시카고대는 정교수를 제안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논문을 쓰기 싫어서였다. 오바마 교수는 12년 동안 논문을 단 한 편도 쓴 적이 없다. 빈민가에서 인권운동을 하느라 너무 바빴다고 한다. 하지만 동료 교수는 오바마가 정치에 입문할 생각으로 논문을 쓰지 않았다고 풀이한다. 젊어서 쓴 논문이 훗날 그의 정치적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랬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교수 경력이나 논문을 쓰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는 데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정운찬 국무총리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검증 작업이 한창이다. 교수가 국무총리나 장관으로 임명되면 검증의 초점이 논문에 맞춰지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도 정 교수가 후보자로 지명되자마자 그가 지난 20년간 논문 한 편 쓰지 않았다는 야당 의원의 폭로가 있었고,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 후 논문 시비는 정 후보자가 같은 내용을 여러 곳에 발표했다는 중복 게재 시비로 이어지고 있다. 노무현 정부 때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교육부총리로 임명되자 한나라당은 중복 논문 등을 문제 삼아 그를 사퇴하게 만들었던 전력이 있기 때문에 할 말이 없게 됐다. 한나라당은 정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 앞서 김 교수 건에 대해 정중하게 사과하는 것이 도리라고 본다.

공직 수행 능력에 검증 집중해야

지금과 같은 논문 검증 관행은 바람직하지 않다. 논문 검증은 교수로서의 능력을 판단하는 자료로서는 유용하다. 하지만 공직자로서의 능력을 판단하는 자료로는 한계가 있다. 논문은 그 교수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는 사상적 기초가 어디에 있는지, 담당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전문적 지식이 있는지 판단하는 자료로 사용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교수가 같은 내용의 글을 여러 곳에 발표했다는 것은,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검증하는 직접적 잣대가 될 수 없다. 남의 연구 성과를 훔친 것, 즉 표절은 범죄다. 표절자는 학자로서도, 공직자로서도 자격이 없다. 하지만 자기 생각을 여러 곳에 발표한 것이라면 그에 대한 평가는 학계에 맡기는 것이 옳다. 중복 게재의 정도와 그 이유, 중복 게재한 매체의 특성, 그리고 학계 관행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교수 출신 국무총리 후보자를 놓고 공직 수행 능력보다 교수로서의 능력에 검증이 과다하게 집중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정치권이나 언론이 논문 검증에 매달리는 이유는 그 사람의 능력을 검증할 자료가 많지 않다는 데 기인한다. 사실 이 문제는 앞뒤가 바뀌었을 수도 있다. 즉 임명된 교수에게 해당 공직에 요구되는 전문적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본다.

교수의 능력과 행정가의 능력, 특히 국무총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전혀 다른 것이다. 교수는 자기주장이 강할수록, 그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할수록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누구의 지시를 받는 것을 싫어하고, 누구에게 지시해 업무를 수행한 경험도 적은 것이 교수다. 특히 공직에 자주 발탁되는 인문사회과학 쪽 교수가 그렇다. 하지만 국무총리는 헌법 제86조 제2항에 따라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각부를 통할’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헌법재판소의 해석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첫째가는 보좌기관으로서 행정에 관해 독자적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남의 명을 받아 일을 해 본 경험이 적은 교수 출신의 정 후보자가 대통령의 명을 받는 일을 잘 수행할지 검증하는 것이 요구된다. 또 행정각부를 지휘 감독할 행정 능력이 있는지 판단하기에도 그의 경력은 충분하지 않다. 서울대 총장으로서 행정 경험이 있다지만 그 정도 경험이 총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수준인지 검증할 필요가 있다.

행정 경험 없는 교수, 局室長부터

현 정권에서도, 향후 정권에서도 교수를 고위 공직자로 깜짝 발탁하는 일은 또 벌어질 것이다. 교수가 풍기는 전문성, 도덕적 우월성, 비정파성 등 막연한 환상 때문이다. 하지만 행정 경험이 부족한 교수를 총리나 장관으로 임명하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교수가 처음 공직을 맡는 것은 국·실장 수준이 적정하다. 여기서 얻은 경험을 다시 대학으로 가져가 연구에 활용하게 하고, 행정 경험을 쌓은 교수 중에서 장차관과 총리가 발탁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교수가 아닌 행정 전문가를 필요로 한다.

문재완 객원논설위원·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moonjaewa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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