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국무총리가 어제 한 충청향우회 모임에서 행정중심복합도시(세종시) 건설과 관련해 “한국과 충청도를 위해 ‘윈윈(win-win)’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조금 기다려 달라. 빨리 설계도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국회, 여론, 특히 충청도 여론을 참작해 훌륭한 작품을 만들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 총리가 주도적으로 마련할 세종시 해법(解法)이 나오기도 전에 극한 대립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충남 연기군에서는 정부 여당의 세종시 원안(原案) 수정 움직임과 관련해 대규모 군민집회와 촛불집회가 계속되고 상가철시와 등교거부 같은 극한투쟁까지 거론되고 있다. 10·28 재·보선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종시 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정치권의 이해가 맞물려 현지에서 자칫 집회와 투쟁이 과열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제 “정 총리가 큰 틀을 제시하고 그 안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 대통령이나 정부가 의견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마당에 국정을 책임지고 이끌어야 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가 “원안 추진이라는 당론에 변화가 없다”는 말을 되풀이하는 것도 당당하지 못한 ‘이중 플레이’로 비칠 수 있다. 민주당이 행정부처를 두 곳으로 분산해 놓은 원안이 초래할 국가적 비효율성엔 눈감은 채 대안 모색을 거부하고 “이명박 정권의 위선과 거짓말”(정세균 대표)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수권(受權) 야당답지 못한 자세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원안 추진보다 수정론 지지가 높게 나오고 있다. 리서치 앤 리서치가 12일 발표한 조사에서는 행정부처 이전을 최소화하고 과학 및 자족 중심도시로 건설하는 수정안에 50.7%가 찬성했다. 원안 추진은 33.3%에 그쳤다. 물론 충청권의 여론도 중요하다. 행정부처를 옮기지 않고서도 충청권 주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대안 마련에 각계가 지혜를 보태야 할 것이다.
여권 일각에서는 기존 장관 고시(告示)를 변경해 정부부처 이전 대상을 축소하는 방법도 거론되고 있으나, 당당하게 법을 개정하는 것이 편법 시비를 줄이는 길이다. 22조 원이나 들어가고 국가의 백년대계(百年大計)가 걸려 있는 세종시 건설은 머리띠와 쇠파이프, 정쟁과 선동으로 끌고 갈 일이 아니다. 모두 차분한 자세로 정 총리가 제시하는 설계도를 지켜본 뒤 국가 및 지역발전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