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의 어느 날, 조범현 감독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어렵다”고 토로했다. KIA는 2005년에 이어 2007년에도 최하위에 머무는 등 해태에서 KIA로 간판을 바꾼 2001년 8월 이후 이렇다할 성적을 내지 못했고, 그러면서 선수단은 뿌리 깊은 패배의식에 젖어 있었다. 이기는 데보다 지는데 익숙했고, 하위권 팀들이 그렇듯 팀 보다 개인을 우선했다. 07년 10월, 꼴찌팀 사령탑에 오른 조 감독은 선수단의 의식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어렵다”고 말하던 그 날, 조 감독은 “머리가 바뀌지 않으면 사람을 바꾸면 된다”고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그런 그가 선택한 카드가 바로 루키 안치홍이었다. 지난해 KIA는 2009년 신인지명에서 서울고 출신 내야수 안치홍을 지명했는데, 이는 조 감독의 여러 수가 내포된 ‘준비된 작품’이었다. 2006년 SK 감독에서 물러나 야인으로 있을 때, 조 감독은 서울고 인스트럭터로 잠시 활동하면서 일찌감치 안치홍의 가능성에 주목했고 결국 지난해 2차 1번으로 안치홍을 뽑았다.
2008년 나지완에 이어 2009년 안치홍 등 새 피에 유독 더 많은 기회를 준 건 조 감독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기업 경영에서 얘기하는 일종의 ‘메기 효과’를 기대한 것이었다. 메기 한 마리를 미꾸라지 어항에 집어넣으면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생기를 잃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조 감독의 이런 노림수는 적중했다. 안치홍이 시즌 초반부터 중용되면서 무기력한 분위기에 빠졌던 기존 선수들은 “자칫 잘못하면 나도 밀린다”는 위기 의식을 느꼈고, 이는 선수단의 새로운 힘이 됐다. 안치홍을 내세워 ‘머리가 안 되면 사람을 바꾸면 된다’고 했던 조 감독의 전략은 선수단의 분위기를 바꿨고, 패배 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들의 죽어있는 혼을 깨웠다. 여기에 조 감독이 누누이 강조한 ‘개인보다 팀이다. 서로 희생하자’는 의식이 덧칠되면서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냈다. 조 감독은 지난 8월 무서운 상승세를 보일 때, “이제 우리 선수들 중에 팀은 졌는데, 자기만 안타 쳤다고 좋아하는 선수는 아무도 없다. 이것이 지난해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이라고 평가했다.
선수들의 잠재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올리는 게 감독이 해야 할 가장 큰 역할 중 하나. 조 감독은 안치홍을 내세워 팀 분위기를 바꿨고,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빨리 한국시리즈 우승이란 알찬 열매를 맺었다. 그가 메기 역할을 기대했던 안치홍은 한국시리즈 우승의 숨은 영웅이 되기도 했다. 조 감독의 ‘안치홍 카드’는 그래서 더 값진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