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알람 소리가 오늘은 귀에 거슬린다. 조금만 더 자고 싶다. 그러다 벌떡 일어선다. 오늘은 우포늪과 무제치늪까지 가야 하는 거 아닌가? 무제치늪까지 못 둘러 보더라도 울주에 도착해서 짐을 풀어야만 일정을 맞출 수 있다. 한번쯤은 오늘 못하면 내일 할 수 있는 여유로 이 여행을 해 봤으면 생각을 해 본다. 여름방학 내내 놀다 개학을 하루 앞두고 두 달치 일기를 한번에 써 내려가는 기분이다. 침대의 강렬한 유혹을 떨쳐내고 오늘의 강행군을 위해 정신을 차려야 했다. 묵은 숙소 앞에 있는 마트에 들러 양말 3켤레를 사고 갈 길이 멀기에 진정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롯데리아에서 햄버거 셋트를 주문하고 억지로 꾸역꾸역 집어삼킨다.
밖으로 나와 출발하려는데 하늘이 검게 물들은 게 영~기분이 좋지 않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거 같다. 지체하지 말고 대략 300km의 긴 거리를 달려야 한다. 순천에서 밀양으로 가는 길에 주유를 한번 하는데 주유소 아저씨가 비옷을 입으란다. 나도 그러는 게 좋을 거 같아 길에서 창피함도 없이 비옷을 꺼내 입는다. 오케이!!달리자! 그렇게 순천에서 2번 국도를 타고 창녕으로 달린다. 청학동 마을 표지판이 눈에 들어오고 칠곡을 거쳐 이름 모를 휴게소에서 잠깐 쉬다 다시 창녕으로 이동한다.
위로 갈수록 하늘에 구름이 예쁘게 피어있다. 혹시나 하고 입고 온 비옷 때문에 덥다 못해 졸리기까지 한다. 정신을 차려야지. 큰 사고가 날 수 있다 안되겠다 싶어 도로가 옆에 바이크를 대고 비옷을 벗는다.. 휴우~ 정말 찌는 듯한 날씨다. 담 주부터 본격적으로 여름 휴가철이라는데 벌써부터 이러면....ㅠ.ㅠ 바이크 매쉬자켓 안 입고 왔음 아휴~생각도 하기 싫다. 매쉬자켓은 겉으로 보기엔 투박해 보이지만 안전성과 통풍을 고려해 만들어서 장거리여행시 꼭 입어야할 장비이자 옷이다. 그렇게 달려 창녕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맙게도 우포늪 표지판도 함께 표시해주는 센쓰 ㅋㅋ 오랜 친구를 만나는 기분이다. 조금만 더 가면 도착이란다. 어제의 순천맛 갯벌이 떠 오른다. 생각지 못했던 전망대에 올랐던 게 근육질인 나에게도 무리였는지 아직도 종아리가 시큰시큰하다. 혹시 우포늪도 높은 전망대에 올라야 하는 건 아니겠지.....ㅎ 우포늪 주차장에 어제와 같이 주차를 하고 카메라를 챙겨 행군이다.
순천만은 생수조차도 안 팔았는데 여기 우포늪은 조금 더 자유롭다. 아이들이 뛰놀며 아이스크림이며 아이스바를 하나씩 물고 다닌다. 어른들도 어디서 났는지 모를 복숭아를 손에 들고 다닌다. 조금은 유원지 냄새가 났지만 그것도 뭐 나쁘지 않았다. 바닥에 휴지로 지저분하거나 널 부러져있지는 않았으니까. 천천히 걸으며 하늘의 예쁜 구름이 마음까지 온화해지게 만들고 있었다. 가을도 아닌데 잠자리 떼들이 어찌나 많던지.
걷다 보니 전망대가 100m란다
헉!! 잠깐!! 어제의 악몽은 아니길 바라면서 진땀을 내서 올라간다. 전망대로 향하는 입구 계단에 아저씨 아주머니 한분이 나란히 벤치에 지쳐 누워계신 모습이 어찌나 웃겼던지 그분들 모르게 내 사진기에 훔쳐넣었다 ㅋㅋ
전망대 문을 열자 시원한 에어컨 바람이 나를 감싸 안는다 워매~좋은거^^ 망원경으로 둘러보는데 새떼들이 하늘을 나는게 너무 자유스러워 보인다.
우포늪이 아기자기해서 조그마한 줄 알았는데 목포 까지란다. 와~~~놀라운걸? 전망대에서 내려와 걸어본다.
<우포늪> 낙동강 지류인 토평천 유역에 1억 4000만 년 전 한반도가 생성될 시기에 만들어졌다. 담수면적 2.3㎢, 가로 2.5㎞, 세로 1.6㎞로 국내 최대의 자연 늪지다.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 가운데 생태계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었고 이듬해 3월 2일에는 국제습지조약 보존습지로 지정되어 국제적인 습지가 되었다.
우포늪(1.3㎢), 목포늪(53만㎡), 사지포(36만㎡), 쪽지벌(14만㎡) 4개 늪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997년 342종의 동•식물이 조사•보고되었다. 식물은 가시연꽃•생이가래•부들•줄•골풀•창포•마름•자라풀 등 168종, 조류는 쇠물닭•논병아리•노랑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205)•청둥오리•쇠오리•큰고니(천연기념물 201)•큰기러기 등 62종, 어류는 뱀장어•붕어•잉어•가물치•피라미 등 28종, 수서곤충은 연못하루살이•왕잠자리•장구애비•소금쟁이 등 55종, 패각류는 우렁이•물달팽이•말조개 등 5종, 포유류는 두더지•족제비• 너구리 등 12종, 파충류는 남생이•자라•줄장지뱀•유혈목이 등 7종, 양서류는 무당개구리•두꺼비•청개구리•참개구리•황소개구리 등 5종이 서식하고 있다
멋진 아름드리 나무 밑에 나무배가 주인을 잃은 채 줄에 묶여 있다.
아니. 주인은 있나 보다. 줄에 묶여 있는 거 보니. 해가 쨍 해서 좋은 사진 찍기는 별루다.
여유가 있담 해가 지는 시점에 셔터를 누르면 이 나무배도 지금의 주인을 기다리는 외로운 배라기보다는 석양에 물들은 따뜻하고 포근한 배로 다시 태어 날 텐데. 시간이 없다.
더 어두워지면 고속도로로 가지 못하는 바이크의 특성상 해가 지기 전에 출발 해야한다. 하염없이 걷는데 혹시 목포까지 가는 건 아닌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다. 반대편 쪽에서 오시는 아저씨에게 얼마나 더 가야 하냐니까 조금만 더 가면 끝이란다. 아~네....
뭐야 깨구락지 한 마리도 못 봤는데 저 표지판의 멋진 새들과 꽃들은 어디 갔을까? 계절을 잘못 선택했거나 시간을 잘못 선택했거나 아님 새들이 이사를 갔거나…. 너무나 보고 싶었던 새들을 보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하는가 보다. 그래도 이 넓은 멋진 늪이 잘 유지되어온 것만으로 위안을 삼자. 목포제방 표지판을 보고는 발길을 돌리다 잼난 쓰레기봉투를 발견했다
‘제발 쓰레기좀 버리지 맙시다 꼭!!’ 글을 쓴사람의 절박함이 글씨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주차장으로 내려가면서 아까 오다 봤던 복숭아 파는 할머니가 생각나 한 봉지 팔아 드리려 했는데 안 계신다. 우포늪 안에 몇 채의 집이 있었는데 그 할머니도 우포늪안의 주민이신 거 같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카메라를 바이크에 싣는데 그늘 밑 벤치에 앉아 계신 아주머니께서 사진 많이 찍었냐고 하신다. 뭐...별루요.... 그러자 사진 찍으려면 여긴 람사르협약 땜에 정치적으로 만든 곳이고 저어~반대쪽 쪽지벌 쪽이 사람도 없고 사진 찍기 좋다고 하신다. 새들도 새벽에나 와야지 낮에 사람들 있음 늪 안쪽으로 모두 들어간다고 한다. 아...그래서 새 한 마리 못 봤구나...이긍.. 담에 오면 여기만 늪이 아니니까 다른 곳에 가서 찍어보라시며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서울이요.” 당신도 서울에서 왔다신다. “서울 어디?” “강남이요.” 하고 뭉뚱그려 말한다. 강남이 다 우리집도 아니면서 ㅋㅋ 저쪽에 시커멓게 탄 남자분이 오시는데 말을 서로 놓으신다. 친척관계인 듯. 아까 양파 파시는 거 같던데…. 참고로 무안 순천 창녕 모두 양파 겁나게 많이 있다. 도로 위 옆에 자리만 있음 쌀더미 쌓듯이 쌓아놓고 우리의 식탁으로 갈 준비를 한다. 아주머니께 인사를 하고 서둘러 울주로 향하려다 한눈에 들어오는 무리들이 있었다
사진 동호회분들이다. 지금부터 석양이 나오면서 멋진 사진을 찍을수 있는 타임이다 근데 난 서둘러 다음 목적지를 위해 떠나야만 한다 앙~~이런 ‘조급함’ ‘서두름’ ‘대강대강’ 이런거 정말 싫은데…. 제주도 반대편 차선에서 ‘두둥’하는 바이크무리들을 봤을 때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던것처럼 지금 이 아름다운 석양을 맞으며 그들과 함께 웃고 떠들고 영혼을 나누고 싶어졌다. 담에 다시 오자라는 위로와 단념이 나의 바이크에 시동을 켠다. 흑..흑..
24번국도를 타고 밀양을 거쳐 엑셀을 꾸욱 밟는다. 1시간 30분만 지나면 어둠의 마왕이 마각을 드러내 또 나를 힘들게 할 것이다. 높은 산 몇 개를 넘었는데 울주 거의 도착해서 주유소에서 물었더니 가지산이란다. 어찌나 높고 아찔하던지 옆으로 보면 천길 낭떠러지다. 거기다 구 길이어서 차도 잘 안 달린다. 미시령이나 한계령을 방불케 하는데 내 짐작에 더 아찔한 기억이다. 어둠이 깔리고 있어서 잘은 볼 수 없었지만 바닥에 사고 난 자리가 무수히 많았다. 아무래도 지그재그 길에서 운전미숙으로 많은 사고가 난 듯 하다. 내 블랙샤크도 가끔씩 바퀴가 밀리는데 ABS가 없었다면 뒷바퀴가 들리고 나는 천길 낭떠러지나 아님 반대쪽 차선으로 밀려 달려오는 차와...... 음...생각만 해도....침이 목구멍을 넘어 꼴딱 넘어간다 ㅋ 내 생각에 여기는 바이크 라이딩하기 아주 좋은 곳이긴 하나 목숨을 내놓아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게 서둘러 가지산을 넘어 울산으로 들어섰다. 일단 아침에 햄버거 하나로 때우고 강행군한 턱에 지금은 지나가는 음식냄새만 맡아도 정신이 번쩍 번쩍 든다. 어디서 먹나......그래 울주 군청 근처에서 먹자. 갈비를 먹어볼까? 음식점들이 나를 보고 불러 세우는데 어느 한 집으로 성큼 들어가버렸다. 갈비주세요! 2인분 달라는데 기본이 3인분이란다. “네? 아~네...주세요.” 그리곤 불에 지글지글 익는 모습도 기다리지 못하고 반찬에 손을 대며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린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3인분을 가장한 2인분이었다. 이런 식으로 장사하시면 서울에선 돌 맞습니다. 이 글을 읽고 뭐라 하셔도 어쩔 수 없다. 양심을 지키셔야지…. 명함도 있는데 확 올려버릴까 보다 ㅋㅋ 이 놈의 성질머리. 고기 양이 적게 나온 건 사실이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이 근처 숙박업소를 물어본다. 여긴 교육시설위주라 숙박업소가 없단다 “엥? 그럼 어디로 가야 하지요?” 한 5분거리에 관광호텔이 하나 있는데 자기도 신경 안 쓰고 다녀서 잘은 모르겠단다. 순천에 가선 호화롭고 큰 숙박시설에 놀라고 울산에 와선 조그만 모텔도 보기 힘든 것에 놀란다. 그리곤 114에 전화해서 번호를 따고 방 있냐고 물어본다. 그리고 인터넷이 중요하니까 설치 돼 있냐니까 랜선 있으니 걱정 말란다. 하지만 방 하나 남았고 그것도 온돌이란다. 앙~ 온돌 허리 아파서 못 자는데... 그래도 가릴 처지가 아니다. 아까 돌아 보는데 모텔이나 호텔은 더더욱 눈에 보이지 않았다. 방이라도 있을 때 들어가자. 내가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냐. 주차장에 바이크를 세우는데 주차 아저씨가 내일 비가 온다고 천막 안으로 넣으란다. 아!!친절한 아저씨^^ 그리곤 무제치늪 브로셔를 받아 들고 호텔 문을 여는데... 엥? 이불 머리 맡에 화장실이 있다 ㅋㅋ 이런 광경은 첨일세!!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샤워장으로 들어선다. 내일 일은 좀 있다 생각하고 양말과 모자를 빨기 시작했다. 에휴~오늘도 하루가 끝나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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