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처럼 여기도 월드컵 열기에 휩싸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입니다. 길거리에 월드컵을 알리는 현수막조차 없습니다.”
사실 그랬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사상 처음으로 열리는 월드컵이라는 점 하나로도 충분히 흥미를 끌만 했지만, 막상 현지에 와 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경기장 시설이나 도로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개최국의 분위기나 흥을 감지할 수 없었다는 점도 실망스런 부분이다. 변변한 월드컵 관련 TV프로그램도 없다.
그 이유가 궁금하던 차에 취재진의 가이드가 해답을 던져줬다.
흑인과 백인이 좋아하는 스포츠가 다르다는 점이 바로 그 이유다. 남아공은 1948년부터 40여년에 걸쳐 인종차별정책으로 세계적으로 비난을 받아왔고, 그 결과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도 허용되지 않았을 정도였다.
남아공은 1992년 FIFA 회원이 됐다.
이런 인종정책은 백인에서 흑인으로 정권이 바뀌면서 없어졌다고는 하나 흑백의 앙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아직도 곳곳엔 그대로라는 것이 가이드의 설명이다. 스포츠에서도 이들은 극과 극이다.
흑인이 축구에 미쳐있다면, 백인은 럭비에 빠져있다. 서로가 좋아하는 종목 이외에는 철저히 외면한다고 한다.
이번 월드컵의 메인 구장인 요하네스버그 사커시티스타디움도 흑인 구역에 지어졌다. 축구와 흑인을 연결시킬 수 있는 대목이다. 남아공 프로리그에서 백인을 찾아보기 힘들다. 팀당 백인은 1명도 안된다고 한다.
국가대표팀에도 상징적으로 백인이 한명 들었을 뿐이라고 한다.
남아공 인구 4500만 명 중 10% 정도인 백인들은 경제권을 쥐고 있다. 축구월드컵이 아니라 럭비월드컵에 빠져있다면 답은 쉽게 나온다.
가이드는 “백인들은 월드컵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다만, 월드컵 관련 비즈니스에서는 백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것이 현지 교민들의 설명이다. 남아공월드컵은 엄밀히 말하면 남아공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개최하는 세계 축제라고 하면 정답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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