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생활 속에서 느끼는 생각, 즉 감상은 각자의 생활 범위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감상은 일관되지 않고 혼잡한 것입니다. 하지만 철학은 체계적입니다. 모든 사물에 보편적으로 타당한 원리를 찾아내는 것이 철학입니다. 철학은 자기의 생활 범위에서 오는 제약을 뛰어넘어 세상의 모든 사물에 타당한 법칙과 원리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이 책은 1980년대 사회변혁에 관심이 있던 대학생들의 필독서였다. 1983년 처음 나온 이 책은 지금까지 3번의 개정을 거쳐 현재는 개정4판이 출판되고 있다.
개정4판에는 초판부터의 서문이 모두 실려 있다. 초판이 나올 당시 이 책의 지은이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듯 편집부라고 돼 있다.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내용 때문에 저자를 숨긴 것이었다. 초판 서문에서 저자는 당시 철학의 관념성과 현학성을 꼬집으며 “철학은 사치품이 아니라, 당연히 생활의 곡괭이가 되고, 삽이 되고, 또한 나침반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철학이 사회 모순을 타파하는 도구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이다.
20여 년이 지나 2005년에 나온 개정4판의 서문에 저자는 “이 책을 읽는 분들은 학생일 수도 있고 직장인일 수도 있다. 각자의 생활 조건이 다르지만 이 책이 그 삶의 하나의 지침이 된다면 기쁠 것”이라고 적었다. 철학의 역할이 사회변혁보다 개인에게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저자는 몇 가지 명제를 제시하며 철학의 주요 개념들을 에세이처럼 쉽게 풀어간다. 저자는 “세상의 모든 것은 관련돼 있다”고 말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인간을 이성적 인간, 기력적 인간, 정욕적 인간으로 나누고 이성적 인간 집단이 정치를, 기력적 인간이 국가 방위를, 정욕적 인간이 생산을 담당해야 한다고 말했다. 저자는 “플라톤의 생각은 오늘날 노동자는 노동자, 농민은 농민, 정치는 정치라는 주장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며 “우리 모두는 각자의 임무만이 아니라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된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의 두 번째 명제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이다. 저자는 “이와 관련된 철학이 변증법인데, 헤겔과 마르크스가 이를 체계화한 뒤로 변증법은 사물을 고정적으로 보는 형이상학보다 철학사적으로 우위를 점하게 됐다”고 말한다. 저자는 사회의 변화는 모순에서 온다며, 마르크스가 주장한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모순을 예로 든다. 마르크스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 지식과 과학의 발전으로 생산력은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생산관계는 사회제도로 고정돼 있기 때문에 변화하지 못한다. 생산관계가 생산력의 발전을 저해하면 결국 생산관계도 변화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인류의 생산관계가 노예제, 봉건제, 자본제 등으로 변화해온 것이다.
저자는 또 ‘의식이 먼저냐, 물질이 먼저냐’라고 물으며 유물론과 관념론의 대결을 소개한다. 서양철학에서 유물론과 관념론을 처음 정식화한 학자는 데카르트였다. 그는 철학사의 무수한 논쟁이 결국 ‘물질과 의식의 관계를 어떻게 보는가’라는 문제로 귀착됨을 밝히고, 이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요약했다. 동양철학에서는 주리론(主理論)과 주기론(主氣論)의 논쟁이 이와 비견된다. 주리론의 ‘이(理)’는 사물의 법칙을 의미하고, 주기론의 ‘기(氣)’는 사물의 재료, 형상을 의미한다. 주리론과 주기론은 각각 ‘이’와 ‘기’ 가운데 어느 것이 우선이고 근본적인가에 대해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주리론의 대표학자로는 퇴계 이황, 주기론은 화담 서경덕을 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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