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이후 잇달아 스릴러물 캐스팅 코믹배우 이미지 이제는 벗어버려 ‘죽이고 싶은’서 야수 같은 연기 소름많은 관객은 유해진을 코믹 이미지로만 기억할지 모른다. 그가 출연해온 흥행작 그것도 코미디 영화 속 캐릭터들 때문이다.
1990년대 말 이후 그의 초기 출연작 목록은 대부분 크게 흥행한 코미디 영화로 채워져 있다. ‘주유소 습격사건’과 ‘신라의 달밤’, ‘공공의 적’ 시리즈 등으로 관객의 눈에 든 그는 연출자 강우석, 김상진 감독의 탁월한 ‘선구안’에 화답하듯 웃음을 만들어낼 줄 아는 탁월한 연기력을 과시했다.
무엇보다 ‘개성 강한’ 외모도 그런 이미지를 강화했을 가능성이 높다. 결코 잘 생겼다 할 수 없는 외모는 코믹 캐릭터에 잘 어울렸고 마치 상호작용하듯 관객에게 스며들며 유해진을 기억하게 했다.
그러나 그는 코미디 연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증명하면서도 ‘무사’와 ‘광복절 특사’ ‘해안선’ 등에 출연하며 코믹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2004년작 ‘혈의 누’, 2005년 ‘왕의 남자’, 이듬해 출연작 ‘국경의 남쪽’ 등의 작품에 이르러 그는 더이상 코믹 이미지에 머무르지 않았다.
‘타짜’와 ‘이장과 군수’ 역시 그만의 이미지에 기댄 바 크지만 그 역시 그 전형성과는 조금 다른 것이었다. 이때부터 스크린 주역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올리기 시작했다.
2008년 ‘트럭’은 그 이전과 이후로 유해진의 필모그래피를 가름하게 한다. 딸을 구하기 위해 무모함과 위험 속으로 빠져드는 트럭 운전사 역을 연기하며 페이소스와 숨어 있던 격정을 드러내며 관객에게 색다른 모습으로 다가갔다.
최근 개봉한 강우석 감독의 ‘이끼’에서 유해진은 ‘트럭’의 캐릭터에서 한 발 더 나아갔다. 미스터리에 둘러싸인 마을의 권력자이자 이장의 힘없는 추종자이지만 자신의 비운을 쏟아내는 장면에서 탁월한 연기력은 관객의 감각을 뒤흔들어놓으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26일 개봉하는 ‘죽이고 싶은’은 이 같은 변화의 과정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읽게 한다. 코믹함 속에서도 내면의 어딘가에 칼날을 감추고 있는 듯한 남자의 캐릭터, 복수해야 할 대상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드는 야수의 심성. ‘죽이고 싶은’의 한 관계자는 “코믹함과 인생의 페이소스를 가득 내뿜는 악인의 이미지에 유해진은 맞춤한 배우였다”고 그를 캐스팅한 배경을 설명했다.
붙박인 듯 고정적이고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할 것 같지만, 유해진은 무한한 변신의 캐릭터로서 충분히 승부할 수 있는 배우임을 입증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