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장에서 만나는 가수의 라이브는 앨범에서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감동이 있다. 프로듀서의 지시대로, 메트로놈이 제시하는 템포대로 부르는 스튜디오 녹음과 달리 공연장에서는 가수나 연주자들이 어떠한 지시나 구속 없이 자신의 감성에 충실한 음악을 들려줘 관객에게 새로운 느낌을 준다. 그래서 다양한 변주 속에서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공연장을 선호하는 가수들이 많다.
올해 데뷔 15년째인 박정현은 많은 무대에서 부른 노래 중 느낌이 좋았던 편곡의 노래들을 음반에 담았다. 최근 발표한 ‘커버 미’ 앨범이다. 일종의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라이브 앨범’이다. 그는 2000년 발표한 임재범의 셀프 리메이크 앨범 ‘메모리스’를 보면서 이번 음반을 진작 기획했었다고 한다.
“그동안 공연을 할 때마다 같은 곡을 매번 재편곡하고, 훌륭한 뮤지션들과 그걸 무대에서 실연하면서 지금까지 음악적 토양을 다져왔다. 그 작업들이 그저 좋은 추억으로만 잊혀지는 게 아쉬워 ‘기록’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열 트랙으로 이뤄진 이번 음반에는 1∼3집에 담겨 있던 노래들이 실렸다. 4집 이후 앨범들은 박정현의 표현을 빌리면 “여전히 새로워서 재해석할 만큼 아직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외했다. ‘나의 하루’와 ‘바람에 지는 꽃’은 각각 2003년 1월, 2009년 5월 가졌던 라이브 현장의 녹음을 그대로 담았다. “그때의 느낌이 제일 좋았고, 더는 반복할 수 없는 버전이었기 때문”이다.
돈 맥클린의 ‘빈센트’는 ‘커버 미’에 실린 유일한 외국곡이다. 박정현은 그동안 무대에서 머라이어 캐리나 휘트니 휴스턴의 노래를 주로 불렀지만, 정작 그 자신이 부르고 싶은 노래는 ‘빈센트’ 같은 음악이었다고 한다. 그 외 ‘유 민 에브리싱 투미’ ‘편지할게요’ ‘몽중인’ 등이 새로운 연주와 창법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박정현은 6년간 자신을 괴롭혔던 큰 고민을 5월 해결했다. 2003년부터 휴학 중이던 학교(컬럼비아대학교 영문학과)를 16년 만에 졸업했기 때문이다. 얻은 것도 많았다. 졸업생 중 상위 두 번째 우등그룹에 주는 ‘마그나 쿰 라우데’를 수상하고, 우수 졸업생들이 가입하는 ‘파이 베타 카파’ 멤버로도 선발된 것도 값진 소득이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음악생활을 할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은 것이 가장 큰 소득이었다.
“아직도 학교에서 얻은 에너지에 푹 빠져 있다. 이제 시작이니 앞으로 어떻게 이 에너지를 쓰게 될지 나도 궁금하다. 큰 고민이 없어졌으니 한동안 미국으로 갈 일은 없을 듯하다.”
‘커버 미’ 앨범은 박정현이 품었던 오랜 바람이 이뤄진 것이기도 하지만, 졸업이라는 인생의 관문을 통과하면서 새로운 에너지를 얻었기에, ‘새로운 음악을 위한 과도기적 앨범’의 의미도 담게 됐다. “지난 1년간 음악을 떠나 있으면서 새로운 음악을 많이 들었다. 음악을 더 많이 찾아들은 후, 새 앨범을 만들 때 가슴에 남는 것으로 트랙을 채우겠다. 그게 제일 솔직한 음악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