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려원은 연예계의 패셔니스타다. 독특한 개성으로 유난한 패션 감각을 자랑하는 그가 이번엔 산골마을 처녀가 되어 발랄하면서도 순박한 면모를 과시했다. 그녀에게 순박함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숱한 무대에서 보아왔던 세련됨의 꺼풀을 벗어낸 모습에선 친근함이 묻어난다. 하지만 친근함을 내보이기까지 정려원은 “에너지를 그날 그날 모두 쏟아부었다”.
● 전쟁의 참화 속 순박한 시골 처녀
4월27일 관객을 만난 영화 ‘적과의 동침’(감독 박건용·제작 RG엔터웍스)은 그 집중적인 그리고 소모 가능한 그의 모든 에너지가 들어간 작품. 한국전쟁 시기, 산골마을에 스며든 인민군과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펼치는 진한 인간애를 그린 ‘적과의 동침’을 한창 무더운 여름에 촬영한 탓이기도 하다.
“땡볕 아래서 오랜 시간 촬영을 할 때는 공포감을 느끼기까지 했을 정도였다.”
그래도 정려원은 “촬영 당일 소진할 수 있는 에너지가 있는데 말 그대로 그 에너지를 쏟아부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고생한 만큼”의 성과로서 자신에게 다가왔단다.
“고생한 만큼”이란 혹 ‘의례적 표현’은 아닐까. 정려원은 “결코 그렇지 않다”며 “많은 선배들과 작업해보긴 처음”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다른 인물들이 물 위에 떠있는 조각배였다면 나와 김주혁 선배는 잠수함이었다”고 돌아봤다. “멋들어진 비유를 좀 더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우리 두 사람이 물 위로 뜨지 않은 채, 조각배의 무게를 든든히 받쳐주는 역할”이었다는 설명이 덧붙었다.
● 비유와 소통의 배우
정려원은 비유를 통해 자주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표현한다. 그것은 남들과 소통하기 위한 또 다른 수단이다. 정려원은 “소통이란 내게 러브 랭귀지”라면서 “마음으로 이해해야 표현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우유를 마실 때 빨대를 쓰는데 그 속에 이물질이 끼어 있으면 마실 수 없다. 내가 뚫어야 하고 뚫려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자신과 상대가 나누는 대화가 곧 서로를 정화시켜주는 것임을 믿고 있다. 정려원은 그 소통의 공간 속에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며 해결책을 함께 찾아나가는” 삶의 작은 즐거움을 놓치지 않는다. “그래서 상대방이 기뻐한다면 그건 또 그대로 내겐 선물이 된다.”
그런 선물을 받기 원하고 주기 원하는 정려원. 이젠 관객에게 또 다른 즐거운 선물을 할 모양이다.
● “할리우드, 현실적 목표”
곽경택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권상우와 함께 주연한 ‘통증’의 촬영을 막 끝내고 마주앉은 정려원에게 항간에 떠돌았던 할리우드 진출설에 관해 물었다. 어린 시절 호주에서 자라나 영어에 능숙한 것도 든든한 힘이 될 것이다.
“아직 확정된 건 아무 것도 없다”는 정말 ‘의례적’으로 들리는 답이 날아왔다. 하지만 이어진 답변은 달랐다.
“꼭 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언젠가는 할리우드에 갈 것이기 때문이다”며 그 느낌의 속내를 드러낸 정려원은 “또 가고 싶다”면서 “더 많은 걸 공감하기 위해서이다”고 말했다. 아시아권 배우들에 대해 할리우드 사람들과 현지 관객들이 지닌 선입견을 깨고 싶다는 말도 이어졌다.
“나의 육감적”인 것으로부터 받은 느낌은 2008년 2월 아카데미상 시상식을 지켜보며 불현듯 갖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반드시 할리우드 카메라 앞에 여보란 듯이 서게 될 날을 꿈꾸고 있다.
윤여수 기자 (트위터 @tadada11) tadada@donga.com 사진|김종원 기자 (트위터 @beanjjun) 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