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말투가 트레이드 마크인 개그맨 이병진(42). 그런데 그의 말마따나 "말만 느리"다.
이병진은 92년 개그맨으로 데뷔해 캐스터 사진작가 MC 등 다방면에서 활동했다. 내년이면 데뷔 20년인데 그동안 한 주도 쉬지 않고 방송을 한 '성실파'다. 트위터가 유행이다 싶었을 때 이미 트위터 계정을 가지고 있고 스마트폰 앱이 '대세'로 잡았을 때 이미 앱을 내놓은 '얼리 어답터'이기도 하다.
그런데 "개그맨으로 데뷔 후 사진을 하면서 이미지가 바뀌었고 최근 이미지가 또 한 번 바뀌었"단다. MBC '우리들의 일밤-나는 가수다'에서 이소라의 매니저로 활약한 덕분이다.
곧 새로운 가수를 맞아 '나는 가수다'에 복귀할 준비를 하고 있는 이병진을 만났다.
▶"이소라 매니저 보통 일 아니었다"
-'나는 가수다'에 합류한 계기는요?
"김영희 PD가 프로그램을 준비하면서 이소라를 MC로 생각하고 있었어요. 소라가 진짜 예민해서 웬만한 사람은 다룰 수 없다는 판단 하에 제가 매니저로 캐스팅됐죠. 소라도 내가 아니면 안 하겠다고 했었다고 하더군요. 소라하고 저는 사실 8년 된 친구예요. 소라가 라디오 DJ할 때 면식도 없는 저를 '이 사람이면 참 기분좋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찾았어요. 게스트 하다보니 소라와 제가 혈액형이나 먹는 음식, 성격, 말투 등 비슷한 게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소라가 라디오 DJ로 복귀할 때마다 저도 자연스레 게스트로 복귀했었고요."
-방송에서는 다른 팀보다 조금 비쳐지는 것 같아 아쉬웠습니다.
"저하고 소라 부분만큼은 방송에서 웃음기가 자연스레 빠지게 됐어요. 소라는 매 회 힘들어했어요. 녹화 직전에 집에 가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그럴 땐 유일하게 내 말만 통해요. 저도 소라 상태가 안 좋아 보일 때는 카메라부터 치우라고 했죠. 예능프로그램이지만 내 욕심 차리자고 어쭙잖은 상황만들고 소라한테 말을 걸면 결국 부담을 주는 거니까 말 수를 더 줄이게 됐죠. 진짜 소라를 돌보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찍는 분량 자체가 다른 팀보다 적었고 방송에 나가는 것도 적을 수밖에 없었어요."
이병진은 트위터 명도 '이소라 매니저'로 바꾸며 지난 4개월을 진짜 이소라의 매니저로 살았다.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었고 잘 해야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었다.
-최근에 이소라 씨가 탈락했어요.
"소라한테는 잘 된 것 같아요. 소라가 탈락해서 저도 조금은 여유가 생겼고요. 4개월 간 이소라라는 뮤지션은 '나는 가수다'에서 음악적인 중심을 잡아줬어요. 많은 분들이 '나는 가수다'가 편곡 작업이 거칠어지는 것 등에 대해 걱정하시는데 경연이다보니 가수들은 순위를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객석에서 박수치고 좋아하는 게 눈에 보이니까 한 주는 상위권 성적을 만들어놓고 다음 주에는 편안하게 하는 게 눈에 보여요. 그 가운데서 이소라가 5,6위를 유지한 건 자기 것을 계속 지켜왔기 때문이에요. 옆에서 지켜보니 감성도 정말 풍부하고 고집도 있고 대단한 뮤지션이구나 싶었어요. 탈락한 뒤에는 '축하해' 한 마디만 했어요."
-시청자들은 가장 '진짜 매니저'같은 개그맨으로 이병진 씨를 꼽았는데요.
"그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소라가 떨어져서 아쉬워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이병진-이소라 팀을 보지 못해 아쉽다는 분들도 많았어요. 신기하게도 소라와 제 스타일리스트가 다른데도 이상하게 녹화 때마다 의상이 맞았어요. 나중에는 아예 소라가 의상을 맞추자고 하더군요. 녹화 전 날 무슨색 의상을 입을 거라고 문자 보내주면 그거에 맞춰서 저도 의상 준비했죠. 자연스레 더 맞아간 것 같아요."
-이소라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하기도 했었죠. 성향을 알기에 준비한 거였나요?
"그렇죠. 소라 어머니도 이야기하시지만 소라는 43살 먹은 소녀에요. 아이같거든요. 뭘 좋아하는지 알죠. 그래서 분홍색 헤드폰을 선물하기도 했어요. 헤드폰을 평소에 쓰지 않는데도 가방에 장신구로 달고 다녔죠. '이소라의 두 번째 프로포즈' 시작할 때도 과자종합선물세트를 만들어서 선물했어요. 소라가 과자를 굉장히 좋아하니까 좋아하는 과자들을 다 담은 세트를 들고가서 선물했죠."
-이소라 씨가 떨어져서 아쉬웠습니다.
"순위는 예상하고 있었어요. 탈락하던 날 순위도 발표 직전에 미리 알았어요. 그래서 카메라 돌기 직전에 준비할 수 있는 여지를 주기 위해 소라한테 마음의 준비는 하라고 언질해 뒀어요."
-이병진-이소라 사이가 특별해 보인다는 시청자들도 많았어요.
"희한하죠? 방송 분량도 적었는데 그게 어떻게 보였는지…. 소라는 남자랑 팔짱끼지 않아요. 아마 저와 정지찬(음악감독)이 유일할 거예요. 소라가 팔짱을 끼면 떨고 있는 게 힘든 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도 가만히 내줬고요."
대기실에서 무대로 갈 때 이소라는 종종 이병진의 팔짱을 끼곤 했다. 이를 두고 누리꾼들은 "두 사람이 부부같은 느낌이다" "서로 기대있는 것 같다"고 했다.
-매니저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네요.
"엄청 힘들었어요. 신정수 PD도 저한테 많이 고마워했고요. 게다가 전 출연진 중에 큰형이에요. (임)재범 형 빼면 소라는 큰누나였고 저는 큰형이었죠. 그러다보니 저는 제작진의 입장도 고려해야하는 예능하는 개그맨이고, 가장 예민한 내 친구를 돌봐야하는 매니저였어요. 두 가지를 동시에 하기는 진짜 어려웠습니다."
'나는 가수다'는 여느 예능 프로그램과 다르다. 이병진은 "'나는 가수다'는 인간적이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프로그램"이라고 말했다.
"개그맨들이 가수들과 짝을 이뤄서 가수가 박수받으면 개그맨도 같이 박수받는 프로그램이죠. 개그맨들은 이 프로그램에서 욕심을 내면 안되요. 짧지만 임팩트있게 웃기거나 절묘한 코멘트를 해서 방송 분량을 챙겨야하죠. 그래서 처음 들어오는 친구들은 힘들어해요."
▶"옥주현 반대? 누리꾼 월권이었죠"
-새 가수와는 어떤 조화를 보여주실지 궁금해요.
"오히려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지금은 시청자가 돼서 재밌게 보고 있어요. (김)제동이도 (박)휘순이도 (김)범수도 빨리 돌아오라고 보고싶다고 연락와요. 프로그램이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많은 일을 겪다보니 출연진끼리 정말 끈끈해요. 수많은 루머와 스포일러들이 아쉬울 뿐이죠."
-경연이 끝날 때마다 인터넷에는 스포일러가 쏟아지죠.
"인기가 없는 프로가 아니니 있을 수는 있겠다 싶었지만 상상보다 너무 커요. 부담이 되요. 가수들은 오죽하겠어요? (옥)주현이가 합류할 때 전 되게 좋았는데 인터넷은 난리났더라고요. 안티가 그렇게 많은지 몰랐어요. 주현이한테 '이 프로그램하면서 안티가 생길 수 있지만 안티를 없애는 것도 이 프로그램 안에서 있을 수 있다. 후자 쪽이 빠를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했어요. 7명 가수 중 가장 걱정스럽고 신경 많이 쓰이는 건 주현이에요. 녹화장에서도 '잘 될 꺼니 걱정하지말고 즐겨라.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게 해라. 이게 기회니까' 그렇게 말하고요. 주현이가 잘 하고 있고 반전의 기미도 보이고 그래서 좋아요."
그는 옥주현의 합류를 두고 누리꾼들이 반대 의견을 올린 것은 "월권"이라고 말했다.
"'나는 가수다'에서 가수들 순위 정한다고 뭐라고 했던 사람들이 마음 속에 급을 정해놓고 이 가수는 출연하면 된다 안 된다를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반성해야죠. 500명의 청중평가단 중에도 그런 생각을 한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옥주현 노래를 듣고 울어요. 미안하니까요. 사람이니 당연하죠. 실제로 보면 더 예쁘고 노래도 더 잘해요. 현장의 감동은 TV에서 보는 것의 10배는 되요. 뒤집을 수 있는 건 현장이 유일해요."
-개그맨 무용론도 있었습니다.
"만약 개그맨이 없었다면? 경연만 남겠죠. 가수들도 버티지 못했을 겁니다. 경연이다보니 가수들의 경쟁이 과열되어 있는데 그걸 식힐 수 있는 사람은 가수가 아닙니다. 개그맨이죠. 사실 가수 다음으로 공이 큰 게 개그맨입니다. 그런데 주목받는 건 가수, 제작진, 그 다음이 개그맨이죠. 개그맨이 정말 양보하고 있는 거예요."
-조만간 새 가수와 '나는 가수다'에 복귀하실텐데요. 찍어둔 가수 있으신가요?
"얼마 전에 토크쇼를 진행하는데 이은미 선배님이 게스트로 나오셨어요. ''나는 가수다'는 안 나갈꺼라고 하시면서 만약 세상이 바뀌어 나가게 된다면 매니저는 이병진으로 할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제가 '그럼 세상을 바꿀게요'라고 했어요. (웃음) 사실 인순이 선배님처럼 나이 많으신 분도 좋고 어린 아이유도 좋아요. 누구든 상관없어요."
그는 "새 가수와도 '진짜 매니저'같은 마음으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수들은 매주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지만 개그맨들은 가지고 있는 걸 보여주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그러니 유지될 수 있는 거예요. 개그맨이 더 욕심내고 분장실 안에서 커플끼리 있을 때 무리수 던지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가수한테 가죠. 무대에 영향을 끼치고요. 그러니 두 사람이 어울려야만 예쁜 거예요. 그래서 어렵고 잘 해야 하고요."
김아연 기자 aykim@donga.com
※ 오·감·만·족 O₂플러스는 동아일보가 만드는 대중문화 전문 웹진입니다. 동아닷컴에서 만나는 오·감·만·족 O₂플러스!(news.donga.com/O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