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나 태국 음식에도 와인이 어울려?” 최근 식도락가 친구가 내게 던진 뜬금없는 질문이다. 남국 요리를 먹을 때는 으레 맥주나 청량음료를 택했던 그였지만 최근 와인에 맛을 들이면서 갑자기 이런 의문이 생긴 것이다. 향이 강한 음식에는 향이 강한 와인이 어울리는 법. 나는 한 치 망설임도 없이 화이트 와인 게뷔르츠트라미너(Gewurztraminer)를 추천했다. 게뷔르츠(Gewurz)는 우리말로 ‘향신료’라는 뜻이다. 포도에서 향신료 향이 난다기보다 그만큼 향이 강한 포도라는 의미.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은 향이 강할 뿐 아니라 복합적이다. 오렌지, 리치, 파인애플, 망고 같은 열대과일향에 장미와 꿀향이 섞여 있고 생강, 페퍼민트, 정향, 후추의 매콤함도 느껴진다. 이런 향이 인도나 동남아 음식에서 자주 느껴지기 때문에 게뷔르츠트라미너를 곁들이면 음식과 와인 궁합이 잘 맞는 것이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다른 포도에 비해 당도가 높아 와인에서 단맛이 날 때가 많다. 향이 워낙 진하고 달콤한 데다 산도가 별로 없어 실제 잔당이 많지 않음에도 훨씬 더 달게 느껴진다. 이 점도 카레처럼 매콤한 향신료를 많이 쓰는 음식과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잘 맞는 이유다. 단맛이 입안에 남아 있는 매운맛을 중화해주기 때문이다. 보디감도 제법 묵직해 돼지고기나 오리고기 같은 육류와도 잘 어울린다. 특히 오리고기를 넣은 타이 레드 카레는 게뷔르츠트라미너와 환상의 커플이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김치제육볶음이나 떡볶이처럼 맵고 향이 강한 우리 음식도 차게 식힌 게뷔르츠트라미너와 즐기기 딱 좋은 안주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포도껍질이 붉다. 수확한 뒤 바로 착즙해 즙만 발효시키기 때문에 화이트 와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즙을 짜는 짧은 순간에도 포도껍질에서 나온 색소가 많아 다른 화이트 와인에 비해 유독 색이 진하다. 그래서 게뷔르츠트라미너 와인을 처음 접한 사람은 먼저 황금빛을 띠는 와인색에 감탄한다. 뒤이어 코에서 느껴지는 농익은 과일향과 꽃향, 거기에 향신료와 허브향이 더해진 복합미가 두 번째 탄성을 이끌어낸다. 게뷔르츠트라미너는 화이트 와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개성을 뽐낸다. 그래서인지 호불호가 갈린다. 화이트 와인의 상큼함을 좋아하는 사람은 게뷔르츠트라미너가 너무 진하고 묵직하다고 느낀다. 반면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좋아하는 사람은 농축된 향에 절묘하게 어우러진 매콤한 맛을 즐긴다.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재배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전 세계 생산량 대부분을 프랑스 알자스(Alsace) 지방이 차지하고 있다. 알자스는 위도가 사할린에 맞먹을 만큼 북쪽에 위치하지만 보주(Vosges) 산맥이 ‘비그늘’이 돼 프랑스에서 가장 건조한 곳 가운데 하나다. 기온은 낮아도 위도가 높아 일조시간이 길고 맑은 날이 많아 알자스에서 만드는 게뷔르츠트라미너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독일, 미국, 뉴질랜드에서도 게뷔르츠트라미너를 소량 생산하고 있지만 알자스산의 품질을 따라잡지는 못한다. 와인을 마실 땐 대체로 자극적이지 않은 안주를 선택한다. 하지만 매운맛을 즐기는 우리는 매콤한 안주에 와인이 먹고 싶을 때도 많다. 그럴 때는 게뷔르츠트라미너가 정답이다. 수은주가 뚝 떨어진 겨울밤. 돼지고기고추장주물럭에 차가운 게뷔르츠트라미너 한 잔은 따뜻하면서도 달콤한 시간을 약속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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