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D/ Black Box 360]암 병동·응급실서 간호사가 의사 행세

  • 동아닷컴
  • 입력 2016년 10월 10일 14시 56분


<충격 증언> 병원에 ‘유령 의사’가 떠돈다! ②

서울 모 대학병원 암 병동 내부.
서울 모 대학병원 암 병동 내부.


서울시내 모 대학병원 암 병동. 간호사들이 수시로 병실을 드나들며 약물을 투여하거나 환자 상태를 체크했다.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나 가족 모두 얼굴에 수심이 가득해 보였다. 조용했다. 병실을 오가는 의료진의 발걸음과 의료기기끼리 부딪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가끔 적막을 갈랐다.

그 사이로 가끔 의사도 아니고 간호사도 아닌 조금 다른 복장의 의료진이 오갔다. 이름을 확인해봤다. 김OO. 기자가 사전 취재할 때 전해들은 암 병동에서 근무한다는 PA(Physician Assistant, 의사보조원) 중 한명이었다. 이 병원 관계자와의 일문일답.

-암 병동에 근무하는 PA는 몇 명인가?

“현재 4명인데 모두 간호사 출신이다.”

-PA와 의사를 어떻게 구분하나?


“환자들은 알기 어렵다. PA들 스스로 ‘의사 아니다’라고 말하지 않는 한. 환자 대부분 담당 교수 이름만 알고 있을 것이다. 주치의가 전공의인지 PA인지 모른다.”

-PA들은 주로 어떤 일을 하나?


“항암치료 부작용도 관리하고, 항암 약물 처방도 한다. 다른 의사 아이디로. 사실상 전공의와 같은 일을 한다. 그런데 환자를 어떤 기준으로 전공의 담당과 PA 담당으로 나눴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떤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건 명백한 의료법 위반이다. 의사 자격도 없는 사람이 다른 의사 아이디로 오더(처방)를 내는 것이니까. 경험이 부족해 잘못된 처방을 내려 환자가 위험한 상황에 빠진다면 과연 누구의 책임인가. 결국 이건 병원의 문제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의료체계를 왜곡해야하는 건지 정말 의문스럽다.”

병원 측은 이에 대해 “암 병동의 의료서비스 수준을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방책”이라고 주장했다. “전공의 1명이 맡아야 할 환자가 30~40명에 달해 지원인력이 불가피하다”는 것. 암 병동에 배치된 지원인력도 “PA가 아니라 정부가 인증한 CNS(Clinical Nurse Specialist, 임상전문간호사)로 평균 15년 이상 전문교육을 받은 전문간호사”라고 했다. 또 “환자에 대한 상담과 교육, 퇴원환자 관리 등이 주 업무고 모든 의료행위는 담당 의사의 지시와 관리 감독 하에 이뤄져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대한간호협회 측은 “임상전문간호사는 양성할 수 있는 제도만 만들어져 있을 뿐이지, PA와 마찬가지로 어떤 의료행위를 할 수 있는지 그 역할과 지위에 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상태”라면서 “그런데도 이들 대부분 의료현장에서 의사의 업무를 대신하고 있어 의료법을 위반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응급실 내부 사진(자료사진)
응급실 내부 사진(자료사진)



PA의 ‘실수’ 쉽게 드러나지 않아


그렇다면 응급실 상황은 어떨까. 정부가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한 지방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가봤다. 119 구급차가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응급환자를 끊임없이 실어 날랐다. 그때마다 응급실 의료진은 비상이 걸렸다.

정상적인 대학병원 응급실이라면 응급의학과 교수와 전공의, 인턴 등 의사면허 소지자가 진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취재결과, 이 대학병원에서는 의사가 아닌 PA가 일부 응급환자에게 진료 행위를 하고 있었다. 병원 관계자의 이야기다.

”중환자는 전공의나 교수가 직접 보지만, 경환자는 PA가 초진을 본 뒤 교수에게 보고하고, 그 교수의 아이디로 처방까지 내린다. 추가 진료를 위해 다른 과에 의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역시 그 환자를 본 PA의 주 업무다.”

-PA가 초진을 잘못 봐서 문제가 발생한 적 없나?

“어디까지 이야기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일이 가끔 발생한다. 예를 들어 다른 과에서 의뢰받았을 때 환자의 상태가 기록과 다르거나, 의사라면 놓치지 않았을 사안이 발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처음에는 경환으로 분류했다가 차후 증세 또는 검사결과가 좋지 않아 중환으로 재분류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의료기록에는 의사가 초진을 본 것으로 돼 있기 때문에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이 대학병원 측은 이 같은 응급실 상황에 대해 “공식적으로 할 이야기가 없다”면서 답변 자체를 거부했다.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왜곡된 의료시스템에서 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PA는 물론 교수, 전공의, 환자까지 모두 피해자”라고 
말했다.
기동훈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왜곡된 의료시스템에서 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PA는 물론 교수, 전공의, 환자까지 모두 피해자”라고 말했다.


‘입원전담의제도’ 안착이 관건


대부분의 대학병원 및 종합병원에서 PA들의 불법 의료행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지금도 PA를 공개적으로 모집하는 병원이 적지 않다. 모집 자격요건을 보면 ‘간호사면허 소지자에 1년 내지 2년 이상 종합병원 근무 경력’만 있으면 지원이 가능하다. 심지어 간호사 자격만 요구하는 병원도 있다.

대부분의 병원 관계자들은 “전공의가 부족한데다 앞으로 전공의의 근무시간을 제한하는 ‘전공의 특별법’이 시행되면 의료인력 공백이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에 PA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전공의들의 생각은 다르다. 조승국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정책이사의 반박이다. “전공의 부족과 PA 고용은 연계될 수 없는 일이다. 병원의 대형화로 규모가 2~3배 커지고 환자는 많아졌는데도 같은 수의 전공의로만 병원을 운영하려다 보니 의사대신 PA를 고용하려는 것이다. 대형병원에서 일하기 원하는 전문의 자원이 많음에도 말이다. 흑자를 내는 대형병원들이 PA 고용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 PA 고용은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밖
에 볼 수 없다.”

기동훈 대전협 회장은 더욱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했다. “흉부외과와 신경외과, 비뇨기과, 산부인과 등은 생명을 다루는 매우 중요한 과다. 하지만 전공의 지원자가 적은 것은 전문의가 돼도 일할 곳이 없기 때문이다. 그 문제를 개선할 생각은 하지 않고 PA로 채우겠다면 상황은 점점 악화될 수밖에 없다. 언젠가 전공의 지원자가 사라진다면 나중에 그 분야의 수술은 누가 할 것인가.”

기 회장은 “낮은 의료수가와 병원의 대형화가 맞물려 만들어진 왜곡된 의료시스템에서 불법적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PA는 물론 교수, 전공의, 환자까지 모두 피해자”라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을 위한 정부의 재정지원과 함께 현재 시범사업 중인 호스피탈리스트(입원전담전문의) 제도가 제대로 정착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매거진d#유령의사#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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