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행촌동에 가면 100년 전 탄생한 빨간 벽돌집이 있다. 이름은 ‘딜쿠샤.‘ 산스크리트어로 ‘기쁜 마음의 궁전’이란 뜻을 가진 이 집은 3·1운동을 처음 세계에 알린 미국 출신 언론인 앨버트 테일러(1875~1948)와 그의 부인 메리 테일러(1889~1982)가 살았던 곳이다.
행촌동 빨간 벽돌집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딜쿠샤’가 다음달 11~23일 서울 중구 국립정동극장 세실에서 공연된다. 뮤지컬 ‘딜쿠샤’ 기획을 처음 떠올린 건 뮤지컬 배우 양준모(42). 그는 뮤지컬 ‘미세스 다웃파이어’ ‘웃는 남자’ 등의 무대에 선 배우인 동시에 뮤지컬 기획자이기도 하다. ‘딜쿠샤’ 개막을 앞두고 14일 서울 중구의 한 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100년 전 지어진 딜쿠샤는 기구한 운명을 지닌 집이에요. 철거 위기도 몇 번 있었죠. 하지만 최근까지도 열 몇 가구가 살았을 정도로 생명력 또한 끈질겨요. 무엇이 딜쿠샤를 100년 넘게 살아남게 했을까. 그게 궁금했습니다.”
2년 전 그는 우연히 한 다큐멘터리 영상을 통해 딜쿠샤와 그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딜쿠샤에 강하게 매료된 그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를 수소문하다 김세미 작가를 만났다. KBS 다큐공감 ‘희망의 궁전 딜쿠샤’(2013년)의 작가인 김 작가는 이번 뮤지컬 ‘딜쿠샤’의 각본까지 썼다.
“작가님은 오랫동안 딜쿠샤를 취재해왔기에 스토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어요. 뮤지컬 각본 초고를 봤는데 인물 하나하나가 진짜 살아있는 느낌이었죠. 딜쿠샤를 자료로만 접한 사람에게선 나올 수 없는 호흡이었어요.”
실제 역사를 기반으로 하지만 ‘딜쿠샤’는 픽션이다. 가상의 인물 금자(하은섬)와 앨버트 테일러의 아들 브루스 테일러(최인형)가 편지를 주고 받으면서 이야기가 펼쳐진다. 딜쿠샤를 만든 사람부터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 또 그곳을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노숙자, 망개떡 장수, 미군 스파이…. 딜쿠샤에 살았던 인물들을 하나씩 만나다보면 한국 근현대사를 훑게 되죠. 역사를 다루는 건 언제나 조심스럽지만 실재했던 이야기라는 것에서 사람을 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1999년 오페라 ‘마술피리’로 데뷔한 성악가이자 배우인 그가 뮤지컬 제작자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2016년. 당시 오페라 ‘리타’를 연출하면서 제작자로서 첫 발을 내딛었다. 지난해 뮤지컬 ‘포미니츠’에 이어 ‘딜쿠샤’까지. 그가 연출, 제작에 관여한 작품만 3개다. 창작 파트너는 맹성연 작곡가로 그의 아내이기도 하다. 앞선 두 작품에 이어 ‘딜쿠샤’에도 음악감독으로 참여한다. 그는 “서로의 개인 작업도 모니터해주는 사이니까 누구보다 스타일을 잘 안다. 그러다보니 이젠 가장 마음이 잘 맞는 창작 파트너가 됐다”고 했다.
‘딜쿠샤’ 공연이 끝날 무렵, 다음달 21일 그는 뮤지컬 ‘영웅’의 안중근 역으로 무대에 선다. 다시 배우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는 “배우든 제작자든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다. 관객에게 어떤 울림을 줄 수 있다면 몸은 좀 힘들지라도 기분이 너무 좋아 이 작업을 멈추지 못할 것 같다”고 했다. 전석 2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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