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6일, 북한 군용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했다.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2014년과 2017년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2014년과 2017년 ‘방공망 구멍’ 문제가 불거지자 군은 국민에게 사과하고 조속히 대응 전력을 마련하겠다고 밝혔지만, 지난 5년간 실질적으로 개선된 것은 없었다. 그 결과 2000만 시민이 사는 수도권 하늘은 무엇이 실려 있었을지 모르는 북한 무인기들에 의해 또 한 번 유린당했다.
무인기가 만만하지 않은 이유
전투기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드론으로 값싸게 대체하는 건 북한만이 아니다. 우크라이나 전장은 2022년 2월 24일 전쟁 발발 이래 세계 2위 군사대국 러시아의 재래식 무기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됐다. 전장에서 우크라이나군을 이기지 못하자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전쟁 의지를 꺾기 위해 민간인을 공격하는 공포 조성 전술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전술에서 가장 큰 위력을 보이는 것이 바로 이란제 자폭 드론 ‘샤헤드(Shahed)-136’이다.
우크라이나 민간인 거주 구역은 물론, 전력·난방 인프라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이 드론은 이란 측 주장에 따르면 최대 2500㎞ 거리를 비행할 수 있고, 50㎏ 탄두를 실을 수 있다. 탄두 중량은 상당히 부족한 편이지만, 사정거리만 놓고 보면 미국 토마호크 순항미사일을 능가하는 수준인데, 놀랍게도 이 드론의 생산 가격은 최대 2만 달러, 한화 약 2500만 원이다. 토마호크 미사일의 100분의 1이 채 되지 않는 가격인데, 최근 러시아의 대량 발주로 생산단가가 떨어지면서 현재는 1만 달러 정도에 생산 가능한 수준까지 저렴해졌다.
이 자폭 드론은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이 드론에는 레저용 초소형 항공기에 들어가는 50마력짜리 가솔린 엔진이 들어가 있었고 미국과 캐나다, 독일 민간 기업들이 RC(radio-controlled: 무선 조정) 항공기나 상용 드론용으로 제작한 자동항법·기체제어 칩셋, 상용 GPS(위성위치확인시스템) 수신기 등이 조악하게 결합돼 있었다. 길쭉한 동체 주변으로 양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큰 날개가 붙어 있고, 중량 대비 엔진 출력이 부족하다 보니 속도는 자동차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느렸다.
길이 3.5m, 폭 2.5m의 덩치를 가진 이 비행체는 시속 100~110㎞ 속도로 비행하다 표적 인근에 도달하면 최대 시속 185㎞까지 가속해 자폭하는데, 낮게 날면서 소음도 크다 보니 지상 보병이나 경찰들의 소총 조준 사격에도 쉽게 격추되는 경우가 많았다.
우크라이나군은 샤헤드-136 드론을 쉽게 요격하고 있다. 도시마다 격추율이 다르지만, 러시아가 발사하는 자폭 드론의 70~80% 이상은 요격되고 있고, 수도 키이우의 경우 90% 넘는 격추율을 보였다. 그만큼 기술적으로 매우 단순한 드론이고, 지상에 서 있는 인간의 눈으로도 볼 수 있을 만큼 낮은 고도를 천천히 날아가는 드론인 만큼 별다른 위협이 안 된다고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샤헤드-136은 2022년 9월 초 처음 모습을 드러낸 이후 우크라이나 각지의 방공망과 인프라를 파괴하면서 우크라이나의 최대 골칫거리가 됐다. ‘만만한 표적’이지만, 그 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10월 이후 우크라이나 영공에 전투기를 거의 띄우지 않고 있다. 1대에 거의 1억 달러나 하는 Su-35 전투기를 비행시간당 평균 2만 달러(약 2500만 원) 안팎의 비용을 들여 적의 대공 미사일이 득실거리는 우크라이나 영공에 띄우고, 1발에 55만 달러(약 7억 원)가 넘는 Kh-31 공대지 미사일을 발사해 표적을 파괴하는 것보다 대당 1만~2만 달러짜리 드론을 날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Su-35 전투기 1대는 통상 1억 달러(약 1270억 원)에 판매되는데, 이 돈이면 자폭 드론 5000~1만 대를 구매할 수 있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Su-35 전투기 1대를 사서 유류비와 부품비, 전투기 감가상각, 미사일 구입비를 지출해 표적 하나를 공격할 바에야 드론 수천 대를 사서 목표 상공을 새까맣게 덮어버리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이 때문에 러시아의 샤헤드-136 드론 사용량은 점점 늘어가고, 우크라이나 피해는 누적되고 있다.
수시로 영공 드나드는 北 무인기
전투기가 수행해야 할 임무를 드론으로 값싸게 대체하는 러시아 사례는 오랫동안 신형 전투기를 획득하지 못했던 북한에 상당히 고무적이었을 것이다. 북한은 2014년 대학 학부생 수준의 기술로 만든 조악한 무인기가 대한민국 방공망을 매우 쉽게 뚫는다는 사실을 경험적으로 확인한 바 있고, 우방인 이란이 후티 반군을 앞세워 드론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다층방공망을 유린하는 모습도 지켜봤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드론 전력을 강화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2014년 북한 무인기 침투 사건으로 나라 전체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다. 당시 북한 무인기는 우리 군이 탐지하거나 격추한 것이 아니라, 고장 또는 연료 부족으로 추락한 것을 민간인이 발견해 신고했다. 조사 결과 이들 무인기는 RC 항공기 동호회 수준 손재주로도 만들 수 있을 만큼 조악했지만, 한국 심장부인 청와대 상공을 선회하며 사진까지 찍었다.
이 사건으로 전국이 발칵 뒤집힌 지 3년이 채 안 된 2017년 6월에는 군사분계선(MDL)에서 직선거리로 260㎞나 떨어진 경북 성주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를 촬영하고 돌아가던 무인기가 추락한 채 발견되기도 했다. 이는 평시에도 북한 무인기가 수시로 우리 영공을 드나들고 있다는 정황을 보여주는 것이자, 우리 군 방공시스템이 북한 무인기를 전혀 탐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제대로 된 대응체계 구축 안 한 군
군은 2014년 국가 심장부인 청와대 하늘이 뚫리는 초유의 사태를 겪고도 지난 8년간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구축하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못 한 것’이 아니라 ‘안 한 것’에 가깝다. 2014년 청와대 무인기 사건 이후 다양한 드론 탐지 전문 레이더 도입이 거론됐고 미국과 유럽, 이스라엘 업체들이 전자기펄스(Electro-Magnetic Pulse·EMP)나 고출력 극초단파(High Power Microwave·HPM)를 이용한 드론 대응 시스템들을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우리 군이 소량 도입을 검토했던 이스라엘제 RPS-42 대인·대공 레이더는 4개의 소형 위상배열레이더로 360도 전 방향을 최대 30㎞까지 탐지할 수 있는 고성능이었다. 현재도 미 해병대가 ‘LMADIS(Light Marine Air-Defence Integrated System)’라는 이름으로 파병 지역에서 효과적으로 운용하는 이 레이더는 “한국형 국지방공레이더로도 북한 소형 무인기에 대응할 수 있다”는 국산 무기 우선론자들의 주장에 밀려 추가 도입이 좌절됐다.
청와대 하늘이 뚫렸음에도 군은 북한 무인기 위협 대응 전력 구축을 ‘장기 과제’로 설정하는 안이한 모습을 보였다. 비용을 절감하겠다며 신형 저고도 방공 무기인 ‘차륜형 대공포’에서 레이더를 삭제하고, 소량의 국지방공레이더와 차륜형 대공포들을 무선 통신망으로 묶어 국지방공레이더가 찍어주는 표적들을 대공포들이 요격하는 기상천외한 방식의 대공전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현행 한국군 방공체계는 의사결정 구조가 대단히 경직돼 있어 신속한 대응을 요하는 방공 작전에 부적합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항공기는 3차원 공간을 매우 빠르게 이동할 수 있고, 특히 드론의 경우 체적이 매우 작아 레이더로 탐지·추적하기 어렵기에 탐지를 담당하는 ‘센서’와 요격을 담당하는 ‘슈터’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돼 각 방공 진지에서 함께 운용되는 것이 상식이다. 물론 최일선 부대가 탐지와 동시에 발포할 수 있는 ‘선조치-후보고’ 재량권도 갖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군은 최일선 방공부대조차 ‘아군기’와 ‘적군기’ 기종을 명확히 구분할 수 있는 피아식별 교육이 제대로 돼 있지 않다. 이 때문에 일선 부대에는 미상 항적이나 비행물체를 탐지했을 때 즉각 사격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현행 규정상 적 비행물체에 대한 발포 권한은 군단 방공작전통제소(Air defense Operations Center), 일명 AOC에 있다. 최일선에서 피아식별이 불가능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피아식별과 발포 결정을 군단급 부대에서 하겠다는 발상이다. 소수의 국지방공레이더에 다수의 차륜형 대공포를 무선으로 연결해 대공전을 하겠다는 발상도 이런 중앙집권적 방공작전 개념에서 나온 것이다.
1초가 아쉬운 대공전 상황에서 최일선 부대의 ‘센서’와 ‘슈터’가 통합돼 있지 않고, 피아식별조차 불가능하며, 발포 통제 권한이 군단급 부대에 있다는 것은 방공작전을 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이번 무인기 사태 때 요격을 위해 출격한 육군 AH-1S 공격헬기가 무려 100발의 20㎜ 기관포탄을 AOC가 찍어준 방향으로 ‘허공’에 뿌려댄 것은 현행 방공작전체계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센서와 슈터 동시 작동 가능해야
미군의 LMADIS 운용 사례에서처럼 드론 대응은 ‘센서’와 ‘슈터’가 한곳에서 동시에 작동할 수 있어야 한다. 드론은 레이더 반사 면적이 매우 작아 레이더가 표적과 접촉(contact)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즉 레이더 스크린상으로 보면 드론이 어느 방향에서 튀어 나왔다 어느 방향으로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드론 대응용 레이더는 360도 전 방향을 동시에 감시할 수 있는 다면(多面) 고정형 위상배열레이더여야 하며, 일단 드론이 탐지되면 표적이 레이더에서 사라지기 전 즉각 공격할 수 있는 무장도 준비돼 있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한 방향만 감시할 수 있게 제작된 한국군의 ‘신형’ 국지방공레이더와 이 레이더가 찍어주는 표적을 사격하게끔 만들어진 ‘신형’ 대공포는 드론 대응 작전에 대단히 부적합하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과 후티 반군의 드론 위협에 대응하고자 도입을 검토 중인 ‘비호-II’는 한국군 차기 대공포와 달리 레이더와 기관포, 미사일이 통합된 시스템이고, 현재 우크라이나에서 90% 이상 드론 요격률을 보이는 대공포체계들 역시 레이더와 기관포가 하나의 시스템으로 통합된 ‘자주대공포’라는 점을 군 당국은 간과하는 것 같다.
2014년과 2017년에 같은 일을 겪었음에도 수도권 영공을 적에게 내준 군 당국과 정부는 이번 기회를 통해 책임을 통감하고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실전 경험이 없으면 외국에 돈을 주고서라도 연구 인력을 파견해 사례를 배워오고,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으면 이를 감추거나 변명하려 하지 말고 개선할 의지를 보여야 한다. 무기체계를 획득하는 과정에서는 비용 절감이나 경제 논리보다 무기 효과 그 자체를 가장 중시해야 한다.
북한 무인기가 이번에는 그냥 돌아갔으니 망정이지 무인기 안에 생물무기 세균이나 화학무기 액화가스가 실린 채로 팔당댐에 떨어졌다고 생각해보자. 조악한 무인기가 남한의 대통령 머리 위를 빙빙 돌게 조정할 수 있고, MDL에서 경상도까지 왕복 비행이 가능할 정도로 대한민국 방공망이 엉망이라면 북한은 우리를 상대로 무슨 짓이라도 벌일 수 있다. 그 도발의 희생양이 군 당국자, 정책 결정론자들 자신이거나 가족이어도 방공 무기를 이런 식으로 들여오고 방공작전을 이런 식으로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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