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 겪은 이야기를 소설로…“난임은 개인의 문제 아닌 사회적 문제”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19일 12시 1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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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의경 인터뷰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낳기로 결심했다. 너무 가난해서 아이를 꿈꿀 수조차 없던  30대를 지나 조금은 숨통이 트였는데, 이젠 노산(老産)이 되고 말았다. 2020년 1월 간절한 마음으로 난임 병원에 들어섰을 때 그의 눈앞에 ‘임신 이전의 세계’가 펼쳐졌다. 병원 대기실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차 있었다. 진료실을 빠져나오는 그녀들의 눈가에서 결과가 읽혔다. 이번에도 실패인지, 유산인지 말하지 않아도 그 마음이 전해졌다.

소설가 김의경(45)이 13일 펴낸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은행나무)에는 그가 지난 3년 동안 난임 병원에서 만난 세상이 담겼다. 2014년 펴낸 첫 장편소설 ‘청춘파산’(민음사)에서 엄마에게 사채 빚을 물려받고 31세 때 파산한 자전적 이야기를 전한 그는 이번에도 난임이라는 가장 내밀한 자신의 이야기를 거리낌 없이 꺼냈다.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17일 만난 그는 “노산, 난임, 유산과 같은 나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 나만의 이야기가 아님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렇게도 많은 여성들이 난임 때문에 병원을 찾는데 왜 이들의 이야기는 여태 세상에 없었을까…. 이런 의문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난임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세상이 반드시 알아야만 하는 사회적인 문제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소설가 김의경이 17일 서울 마포구 은행나무 출판사에서 자신이 펴낸 장편소설 ‘헬로 베이비’를 소개하고 있다.  안철민기자 acm08@donga.com
소설은 경찰, 변호사, 수의사, 전업주부 등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진 30, 40대 여성 7명이 난임 병원이라는 연결고리로 만나 단체 메신저 대화방 ‘헬로 베이비’로 뭉치는 이야기다. 그는 “시험관 시술을 받는 햇수가 늘어날수록 여성들은 고립되기 쉽다”며 “이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말을 건네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역시 난임 병원에 다니는 3년 동안 “터놓고 이야기할 곳이 없어 외로웠다”고 했다. 10여 차례 시험관 시술에 도전했지만 실패만 쌓였다. 그는 “난임 병원에 다니느라 본업을 뒤로 미뤄뒀는데, 이러다가는 엄마도 작가도 못 되겠다는 불안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그가 난임 병원에서 만난 또래 여성들도 같은 불안을 느꼈다. 그는 “난임 휴가를 쓰면 직장에 민폐를 끼칠까 봐 상당수는 휴직을 하거나 일을 관둔 채 임신을 준비한다. 난임 병원에 다니는 여성들은 일은 물론 사회적 관계까지 단절되는 상황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2020년 1월 첫 시험관 시술로 찾아온 아이를 유산했을 때 그가 기댄 건 가족도 친구도 아닌 인터넷 ‘맘카페’였다. 그는 “이전의 나는 맘카페에 글을 쓰는 여자들을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내가 유산을 한 뒤에야 이 아픔을 알아줄 데가 이곳뿐이란 사실을 깨닫게 됐다”고 했다. 그가 유산 경험을 털어놓자 순식간에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집 주소를 말해주세요. 보약을 지어 보낼게요.’  ‘엄마가 먼저 몸을 추슬러야 해요.’

그는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들의 댓글이 나를 견디게 했듯, 소설 속 주인공들에게도 서로가 서로를 견디게 하는 힘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난임 병원에서 만난 또래 여성들을 단체 대화방에 모으는 소설 속 캐릭터 44세 프리랜서 기자 강문정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이들은 누구에게도 터놓을 수 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의 곁을 지킨다. 

 



그는 요즘도 틈날 때마다 맘카페를 찾는다.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는 한 여성의 안부가 궁금해서다. 그는 “10년 가까이 시험관 시술을 받아온 제 또래 여성이 요즘 카페에서 보이지 않는다”며 “그를 다시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오래 기다렸어요. 우리 같이 맛있는 밥 먹으면서 못다 한 얘기 나눠요. 실패담도, 포기담도 괜찮으니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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