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오래전 집을 떠날 때」

  • 입력 1996년 10월 30일 20시 47분


「신경숙 지음」 지난 한 달간 전혀 문학적이지 않은 일로 무척 바빴다. 불려다니는 데도 많았고 또 어쩔 수 없이 들여다 보아야 할 데도 많았다. 그러다 문득 내가 살아가는 시간들이 이렇게 속절없이 닳아 없어져 가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때 서점에 들러 몇 권의 책을 골랐다. 그 중에서 제일 먼저 고른 것이 신경숙의 「오래전 집을 떠날 때」였다. 참 이상도 한 일이었다. 알면서도 나는 왜 그 책을 집어들었을까. 내가 안다는 것은 거기에 실린 작품들이 중단편으로는 「풍금이 있던 자리」 이후 한발 한발 신경숙이 걸어온 길이며, 또 책을 열어보기 전엔 몇 편이 실렸는지 모르겠지만 그것들 모두 문예지에 발표될 때 내가 찾아 읽은 작품일 거라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선뜻 그 책부터 골라들었다. 어쩌면 나는 나도 모르게 끌려가고 있는 문학판의 비문학적 속도 속에 나를 붙잡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책을 펼쳤을 때 표제작인 「오래전 집을 떠날 때」를 포함해 여덟 편의 중단편이 그 안에 「모여 있는 불빛」처럼 「깊은 숨」을 쉬고 있었다. 어떤 작품은 그 작품을 읽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통화를 했던 기억도 새롭다. 그가 그 작품을 쓰는 동안 묵었던 성산포 그 호텔에 나 역시 그 풍경 속에 묵으며 「깊은 숨」을 쉬었다는 이야기도 했었던가. 다시 읽어도 그의 소설은 그와 참 닮아 있다. 그가 무슨 말을 할 때 머뭇머뭇 말하듯 그의 소설도 더디게 머뭇머뭇 다가와 깊이 우리 마음 속에 스며든다. 그리고 한 번 스며들면 그 느낌은 그의 「깊은 숨」처럼 다시 우리 곁을 떠나지 않는다. 때로는 아픈 것, 그러기에 더욱 아름답고 숨막히는 것, 눈물이 아니더라도 그러면서 티없이 맑게 다가와 영혼을 적시는 것들, 가만히 따라 읽다보면 자기 삶의 고백과도 같은 그의 글은 문장 하나 하나가 문체를 이루고, 그 문체가 다시 그가 말하는 삶의 무늬를 이룬다. 그걸 책을 덮은 다음 더 깊게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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