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전부예요?』
여행 중 만나는 사람들은 예외없이 내 배낭을 보면 이렇게 묻는다. 장기여행을 하려면 필요한 것이 많을텐데 어떻게 그런 작은 배낭에 다 넣고 다니느냐는 것이다.
나는 배낭을 쌀 때마다 심사숙고를 한다. 홀로 육로여행을 하려면 짐을 어떻게든 작고 가볍게 꾸려야 하기 때문이다. 오래 다니다 보니 나름대로의 요령이 생겼다. 우선 한가지를 여러용도로 쓸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다닌다. 예를 들면 큰 법랑컵으로는 물을 끓이거나 간단한 음식을 해먹을 뿐만 아니라 세숫대야로도 쓴다. 큰 면보자기는 수건이나 간이 이불이 되기도 하고 허리에 둘러 치마로 입기도 한다. 약간의 편리함을 위한 물건은 아예 가져갈 생각조차 하지 않고 꼭 필요한 것 중에서 무게가 나가는 비누 등은 반으로 잘라 넣는다.
그런데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마을로 가기 위해 얻어 탄 트럭에 이렇게 엄선된 물건을 넣은 보조배낭을 그만 놓고 내렸다. 그 안에는 모자, 휴지, 벌레 물렸을 때 바르는 약, 선텐로션 등 여행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 들어있었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이 길로 당장 도시로 나가 잃어버린 물건들을 사야만 되겠어」. 그러나 그때가 마침 장마철이라 며칠이 지나도록 차편을 구하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그 배낭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이 내가 생각했던 만큼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모자는 없어도 괜찮았다. 가지고 다니는 면보자기를 뒤집어 쓰니 훌륭한 모자가 되었다. 휴지대용으로는 일기장을 뜯어서 쓸 수 있었고 벌레 물린데도 민박집 식구들처럼 레몬즙을 바르니 견딜만 했다. 없으면 큰일 나는 줄 알았던 선텐로션은 애초부터 없어도 상관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지내다 보니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느라 돈과 시간을 없애고 또 여태까지 무겁게 가지고 다녔던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 잃어버리면 어쩌나하고 걱정까지 했으니 말이다. 이번 아프리카 중동여행에서 돌아와 배낭을 싸는 기분으로 집안 가득 채워져 있던 물건들을 과감하게 정리해 지하실에 갖다 놓았다. 그런데 몇달이 지난 지금까지 한번도 내려 보낸 물건을 가지러 간 일이 없다. 그것들도 잃어버린 배낭안의 물건처럼 없어도 별 지장이 없는 것이었다.
우리가 생활하는데 꼭 필요한 것은 과연 몇가지나 될까. 오늘 한번 집안을 둘러보자.
한 비 야(오지여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