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洪찬식기자」 문화재수집가 간송(澗松) 전형필선생(1906∼1962)이 평생에 걸쳐 수집한 우리 문화재는 그 규모나 내용 면에서 국내 최고의 컬렉션으로 평가된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최고의 갑부로 꼽혔던 간송은 그 재력을 바탕으로 서화 도자기 등 문화재 수집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식민지치하 민족문화의 정수가 해외로 유출되거나 멸실되는 것을 막는데 크게 공헌했다. 당시 애국지사들이 무력투쟁으로 일본과 싸웠다면 간송은 우리 문화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통해 다른 차원의 「애국」을 한 셈이다.
그가 수집한 문화재들은 지난 66년 설립된 간송미술관(서울 성북동 ·02―762―0442)에 소장돼 후대에 전해지고 있다.
문화체육부가 11월의 문화인물로 전형필선생을 선정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대규모 전시회가 3일부터 17일까지 간송미술관에서 마련돼 고미술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11월의 문화인물 간송 추모특별전」이란 제목의 이번 전시회는 간송이 수집한 문화재 가운데 뛰어난 것들만을 골라 일반인들에게 보여주는 행사로 모처럼 우리 문화재의 진수를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출품작을 살펴보면 국보와 보물이 각각 11점, 서울시문화재 4점이 있으며 지정문화재는 서화나 도자기 등 각 분야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명품 등 모두 1백여점이다.
이 가운데 조선조 선비화가 겸재 정선의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은 진경산수라는 독창적 화풍을 개척한 정선의 대표작이다. 금강산을 중심으로 강원도와 동해안일대의 명승지그림 21폭이 실려 있다.
용인에 있는 친일파 송병준의 집에서 나왔다는 이 그림첩은 송병준의 머슴이 군불땔감으로 아궁이에 넣기 직전 골동품상인이 발견, 극적으로 구해냈다는 일화를 갖고 있다.
출품작 가운데 국보 68호로 지정돼 있는 「청자상감운학문매병(靑磁象嵌雲鶴文梅甁)」은 고려청자 가운데 최고 명품으로 전형필선생이 1935년 일본인 골동상으로부터 2만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사들였다. 당시 서울의 웬만한 기와집 값이 2천원 정도였으므로 2만원은 열채값에 해당되는 돈이었다.
이밖에 고려청자를 전문적으로 수집했던 영국인 개츠비로부터 1937년에 인수한 청자류들은 공주에 있는 5천섬지기 땅을 처분해 사들였다.
휘문고보와 일본 와세다대학을 나온 간송은 고보 때 은사인 춘곡 고희동화백과 서예가이자 금석학자였던 위창 오세창선생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문화재를 수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