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鄭恩玲기자」 「…나는 세운상가 키드, 종로삼가와 청계천의/아황산가스가 팔할의 나를 키웠다」고 읊조렸던 시인 유하(33·본명 김영준)가 15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은 95년 펴낸 시집 「세운상가 키드의 사랑」.
8만부가 팔려나간 두번째 시집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동에 가야 한다」(91년)와 이 시의 영화화로 세인들의 눈길을 적잖이 끌었지만 유씨의 문학상 수상은 이번이 처음이다.
88년 등단이후 첫 시집 「무림일기」부터 네번째 시집 「세운상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시에는 싸구려 무협지와 종횡무진 등장하는 영화제목들, 심혜진과 「비틀스」 「룰라」 24시간편의점까지 대중문화의 온갖 상품들이 「짬뽕」처럼 뒤섞여 있었다. 그 상품들을 시어로 삼아 그는 자신이 반항적인 청소년기를 보낸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의 도시풍경과 그 속을 부유하는 우리시대의 삶을 그려냈다.
「…동시상영관의 찌린내와, 부루라이또 요꼬하마/양아치, 학교의 개구멍과 세운상가의 하꼬방/모든 종류의 위반을 사랑했고 버려진 욕설과 은어만을 사랑했던」(「세운상가 키드의 사랑3」중) 70년대의 소년은 90년대에 이르면 「24시간 편의점」에서 일상의 탈출구를 찾는 우울한 30대로 그려진다.
「25시라는 상상의 편의점으로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다/난 24시의 일상을 탈영한, 떠도는 자이므로/박쥐처럼 익숙하게 그곳으로 스며든다…」 (「참치죽이 있는 LG25시의 풍경1」중)
유씨는 「세운상가 키드」이후로 신작시를 발표하지 않았다.
『대중문화는 내마음속의 지울 수 없는 기호다. 그러나 영화감독을 하며 대중문화에 너무 깊이 함몰돼 풍자의 힘을 잃어가는 것 같다. 당분간은 충전을 위해 시창작을 쉬어야할 것 같다』는 것이 유씨의 고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