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막한 초등학교 과제물]애들도 모르고 부모도 모르고

  • 입력 1996년 11월 19일 20시 32분


「曺炳來기자」 서울 강남구에 사는 강모씨(42·회사원)는 지난 초여름 초등학교 4년생인 아들과 함께 개구리밥을 구하기 위해 일요일 내내 서울 근교를 돌아다녔다. 학교숙제인 개구리밥을 끝내 구하지 못한 강씨는 선생님 앞으로 구하지 못한 사연을 편지로 써 시무룩해 있는 아들에게 쥐어 보냈다. 학급에서 개구리밥을 구해온 학생은 한명뿐이었다고 한다. 그 학생은 부모와 함께 다니는 주말농장의 웅덩이에 개구리밥이 잔뜩 있는 것을 발견하고는 있는대로 다 걷어와 급우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그일로 인기를 얻은 「개구리밥」 학생은 2학기에 반장으로 뽑혔다. 초등학생의 창의력과 탐구력을 기르기 위해 교사들은 채집이나 만들기 관찰 등의 과제를 자주 내고 있으나 학부모에게는 큰 부담이 되고 있고 시간이 부족한 맞벌이 부부에게는 더욱 큰 문젯거리다. 학생 혼자 해결하기 어려워 부모에게 도와달라고 하는 과제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과제를 해본 적이 없는 학부모로서도 자녀가 내밀어보인 과제를 보고 막막한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플라나리아를 구해보자」. 전업주부 김모씨(39·서울 서초구)는 딸에게 플라나리아가 무엇인지 되물어야했다. 딸은 중랑천이나 안양천에 살고있는 거머리 비슷한 생물이라며 참고서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김씨는 그후에도 도깨비바늘이 무엇인지, 무궁화씨앗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채 이를 구하러 다녀야 했다. 부모는 마치 자신의 과제인듯이 온갖 궁리를 하고 재주를 부려 자녀의 과제를 해결해주어야 한다는 압박까지 받고 있다. 부모 덕에 과제를 잘해온 학생이 교사로부터 칭찬도 받고 급우들의 부러움을 사기 때문이다. 「볍씨 조씨 수수씨를 구해보자」는 딸의 과제를 본 전업주부 서모씨(38·서울 강남구)는 궁리끝에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갖고 강남고속버스터미널상가의 꽃가게를 뒤졌다. 마침 꽃꽂이 장식으로 쓰려고 갖다둔 수숫대를 찾아내 수수씨를 털어내 뜻을 이뤘다. 최모씨(38·회사원·서울 성북구)는 밤늦게까지 딸의 과제인 글라이더를 만들었지만 제대로 날지 못했다. 다시 뜯어 만들 수 없어 그대로 쥐어 보냈으나 저녁에 딸에게서 「아빠가 못만들어서 날리기 대회에서 선수로 뽑히지 못했다」는 투정섞인 말을 들어야했다. 교사도 과제 때문에 골머리 앓기는 마찬가지. 여러차례 학부모에게서 과제 때문에 불평 전화를 받은적이 있는 서울의 김모교사(29)는 『실제 과제물을 구할 수 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동료 교사들과 서울 근교를 돌아다녀본 후 어렵다는 것을 알고는 과제 내기를 포기한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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