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곡 「선구자」원제목은 「용정의 노래」』…조선족음악가

  • 입력 1996년 11월 26일 17시 04분


장렬한 조국 광복의 웅지를 노래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전국민의 애창곡으로 손꼽혀온 가곡 「선구자」의 원제목은 「龍井의 노래」였으며 가사도 현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고 중국에 살고 있는 한 조선족음악가가 주장,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는 또 「용정의 노래」가 1944년 봄 흑룡강省 목단강市 인근의 영안에서 열린 趙斗南 선생의 「신곡 발표 공연」을 통해 첫선을 보였기 때문에 「선구자」의 작곡연대를 1932년으로 보는 것은 근거가 없으며 당시 공연에서는 尹海榮 작사, 조두남작곡의 「목단강의 노래」「산」「흥안령 마루에 서서」 등도 함께 소개됐다고 주장했다. 가곡 「선구자」와 관련, 이같이 주장하고 있는 사람은 해방 때까지 2년여동안 조두남 선생과 중국 흑룡강省에서 음악 활동을 했고 윤해영과는 44년 처음 만난 후 45년 9월부터 한동안 작사가와 작곡가로 함께 일한 바 있는 金鐘和옹(75·길림省 연변조선족자치州 연길市). 흑룡강省 영안현 신안진과 연길 등지에서 고교 음악 교사로 활동했고 현재 중국음악가협회 회원인 金옹은 최근 遼寧민족출판사가 출판한 조선족 문학총서 「두만강」4집에 게재된 연변인민출판사 취재진(박청산,류연산)과의 인터뷰에서 "음악가의 양심으로 「선구자」의 사실을 밝힌다"고 말했다. 작사자로 알려져 있는 윤해영은 국내에서, 지난 32년 어느날 하얼빈에 살고 있던 조두남 선생을 찾아가 시 한편을 내어놓으며 표연히 사라진 「독립군」쯤으로 인식돼 있다가 지난 91년 이후 변절한 親日시인이라는 주장이 나와 이 노래의 무분별한 방송,연주에 제동이 걸려왔다. 그러나 金옹의 술회 내용이 맞다면 윤해영은 현재 불리고 있는 「선구자」의 가사를 쓴 적이 없고 애수에 젖은 동요 외에 「拓土記」「해란강」「오랑캐 고개」「樂土滿洲」 등의 친일시를 썼기 때문에 「변절」운운할 필요가 없는 친일시인 뿐인 인물이며 「선구자」의 작사자는 따로 있다는 얘기가 된다. 金옹은 「용정의 노래」에는 「선구자」에 나오는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등의 구절은 전혀 없었으며 그 대신 `눈물의 보따리' `흘러온 신세' 등 유랑민의 서러움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용정의 노래」 발표 당시 목단江 일대는 물론 한국 전체에서도 항일투쟁이 대치 단계에 들어가 군경들의 경계가 삼엄한 때인데 커다란 영안극장에서 어떻게 `조국을 찾겠노라 말달리던 선구자'라고 노래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이 노래는 곡은 원래대로지만 「용정의 노래」를 가사부터 제목까지 고친 것"이라고 주장했다. 「선구자」의 작곡 시기와 관련, 그는 "한국 책을 보면 「선구자」노래가 32년에 창작됐고 용정에서 불렸다고 하는데 그때 용정에서 살았거나 공부했던 사람들은 그런 노래를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그는 또 "다른 예술가처럼 자기 작품 자랑을 좋아하는 조두남 선생이 나와 2년간이나 사귀었고 별로 허물이 없는 사이인데도 44년 봄 `신작 발표 공연' 전에는 그런 곡을 만들었다는 얘기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조두남 선생보다 2∼3세 위인 윤해영은 교편을 잡다가 40년대 당시 만주국의 친일조직 協和협회에 간여했으며 일제 패망 이후 「동북인민행진곡」「동북인민자위군송가」 등의 노랫말을 만들었고 한국전쟁 발발전 북한으로 가 "장군님 주신 땅에 밭갈이하세" 등의 구절이 포함된 「분여받은 땅」의 노랫말을 만든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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