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각 저생각]전철속의 일등병

  • 입력 1996년 11월 26일 20시 02분


너무나 상식적인 말이지만 사람의 관심은 자기와의 관계에서만 적극적이 된다. 대학에 갈 자녀가 없는 집에서는 수능시험에 숫제 관심이 없고 모두 끝난 집에서도 언제 저런 난리가 있었더냐 싶게 강 건너 불구경하듯 건성이다. 더욱 요사스런 심사를 갖게 하는 것은 아들이 군복무중일 때와 전역한 후에 군인을 보는 시선이다. 아들의 입대 전후에 울지않는 어머니는 별로 없다. 예전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입히는 군대인줄 알면서 어느새 성숙하여 국방을 책임지는 중차대한 임무를 띠고 떠나는 아들에게 대견함과 긍지도 느끼면서, 또한 강건한 사나이가 되어 돌아올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면서도 보낼 때 운다. 아들의 체취 묻은 옷과 신발이 소포로 돌아올 때 울고 훈련 끝낸 아들을 처음 면회갔을 때 힘찬 구호와 거수경례 붙이는 모습을 보고도 운다. 「우정의 무대」를 챙겨 보면서 「엄마가 그리울 때…」가 나오면 어김없이 또 울고, 데모진압으로 거리에서 고생하는 전경들 보면 가슴이 미어지고 요소마다에서 보초 서고있는 전경들에게 슬그머니 사탕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간절한 모성이 된다. 그러다가 아들이 제대하고 돌아오면 언제 그런 절절한 사랑과 마음씀이 있었더냐 싶게 무심해져버린다. 주말 오후, 지하철3호선 안에서 서류봉투 옆에 들고 꼿꼿이 서있는 일등병을 보았다. 검붉은 살갗이었으나 풍김이 맑고 신선했다. 맞은편 의자에서 자기들만의 공간인듯 얼크러져 껴안고 히히덕 거리는 남녀를 가끔씩 내려다 보면서 입술이 한일자로 다져지고 눈빛이 형형스러워졌다. 못마땅한 속마음이 근엄한 표정으로 변하면서 목에 힘줄도 생겼다. 진정으로 믿음직스럽게 보였다. 이성적인 의식이나 사고가 마비되거나 변화되어 있는 때에 전 세상속에서 일등병의 모습은 숲속의 청량한 샘물처럼 산바람처럼 참신하게 닿아왔다. 자식들 전역하여 군인들이 건성으로 보이는 때에 개인적인 이해감정없이 솟구치는 눈앞의 일등병에 대한 관심이 새삼스럽게 소중해서 웃음을 머금었다. 자기중심의 편협한 사고의 고리에서 비로소 풀려나는 것 같은 편안한 기분을 맛보았기 때문이다. 해방감과 비슷한 감정이기도 했다. 김 지 연<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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