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사 사회부 내근업무가 내키지 않는 이유중의 하나는 독자들로부터 이런 전화를 가끔 받기 때문이다. 사회부는 제보는 물론 유엔 회원국이 얼마나 되느냐고 묻는 초등학교 어린이로부터 가출한 아내를 찾아달라는 하소연까지 신문사 편집국에서 독자전화가 가장 많이 걸려오는 곳.
큰 맘먹고 전화를 했는데 받는 사람이 여자면 마음이 놓이질 않는 모양이다. 『기자분 안 계세요』 『남자분 있으면 바꿔주세요』면 그래도 나은 편이고 심지어 『거기 사람없어요』하는 「기막힌 주문」이 들어오기도 한다. 여자는 사람이 아니란 얘긴가.
여기자를 「고등영장류」정도로 취급하는 건 출입처에서도 다를 바 없다. 여기자, 그것도 중년의 기혼여기자라면 보는 시선이 더욱 시큰둥하다. 진지한 답변은 회피하고 객쩍은 농담이나 하려들기 일쑤다.
아직도 많은 직장여성들이 저녁 회식자리에서 일찍 일어서면 『여자는 할 수 없어』 막판까지 남아있으면 『주제를 모른다』는 모순된 힐난을 들으며 살아간다. 여성에게 불리한 법과 제도, 관습에 대항하기를 포기하고 오직 아들을 낳는 것만으로 인간대접을 받으려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우리 사회의 출생성비는 가족계획 사업의 성공으로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진 80년대 이후 줄곧 자연의 섭리를 거슬러왔다.
통계청에 따르면 80년만 해도 여아 1백명 기준에 남아 1백5.3명이던 남녀성비는 호랑이띠해인 86년에 1백11.7, 말띠해인 90년에는 1백16.6명까지 치솟았다. 그해에 태어날 예정이었던 수많은 딸들이 태아성감별에 의한 인공임신 중절로 사라져간 것이다.
정부는 최근 태아성감별 의료인에 대한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해 성감별이 적발될 경우 즉시 면허를 취소하도록 했다. 그러나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태아성감별이 사라진다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남자로 살아가기가 여자로 살아가기보다 더 좋은 수십 수백가지 이유가 있는 한, 『남자분 아무나 바꿔달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한, 「여자아이 죽이기」란 악습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다.
< 김 세 원:사회1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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