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喜相·許文明·尹景恩기자」 지금의 30대들이 대학에 다니던 시절, 그 때는 유신말년이거나 전두환정권 시절이었다. 그 때의 한국은 「학생들을 공부만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운동권」은 물론 「평범한」 학생들조차 「도서관파」로 분류되는 것을 껄끄럽게 여겼다.
지난 85년 「온순하기 짝이 없던 한 시골학생이 왜 가장 열렬한 학생투사가 돼야 했는가」를 밝히는 항소이유서로 읽는이들을 찡하게 만들었던 「운동권출신」 유시민씨(37). 지금은 독일에서 「늦깎이 도서관파」가 돼있다. 최근 그를 찾아간 벗에게 유씨는 『공부하는 즐거움이 이렇게 큰데…. 이 공부를 할 수 없도록 우리를 내몰았던 그 때가 새삼 미워진다』고 털어놓았다.
「가장 하고 싶은게 공부」라는 역설속에 20대를 보냈던 그들은 이제 30대다. 요즘 그들의 「늦공부」가 한창이다. 외국어학원가에는 30대 수강생들의 잰걸음이 아침저녁으로 분주하다. 대학캠퍼스 한구석의 야간대학원에서는 차가운 밤하늘로 30대의 웃음이 퍼진다. 그뿐 아니다.
대학의 평생교육원, 방학에만 강의가 있는 교육대학원에도 30대 주부와 2년제 교육대학을 나온 초등학교 교사들이 향학열을 불태운다. 두 아이의 엄마로 미술학원을 운영하는 전정민씨(39)는 숙명여대 아동학과 박사과정을 다닌다. 공부 욕심이 많은데다 어린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다보니 아동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아예 전문분야를 바꿔 늦공부에 나섰다.
보해양조 사보를 만드는 김옥주씨(30·여).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쳤고 얼마전 박사과정 시험을 치렀다. 그는 『서른이 되면서 누구나 느끼는 중압감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면서 『책과 가까이 한다는 일 자체가 너무 좋다』고 자랑한다.
이화여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한 뒤 일본인 회사에도 4년여 근무했던 C씨(30). 유보해뒀던 오랜 꿈인 문학공부를 방송통신대 국문과 3학년에 편입해서 키워가고 있다.
대학원에 다니는 몇몇 30대 주부들은 「남편장학금」을 탔다며 후배겸 동기생들을 모아 점심턱을 내기도 한다. 남편에게 유학보내달라고 조르는 주부들도 적지않다. 그들은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라며 『몇년 더 지난뒤에 가면 당신이 더 피곤해진다』는 「협박」을 덧붙인다.
고려대 산업공학과를 나와 대기업과 사회단체를 거쳐 요즘은 기업컨설팅을 하고 있는 정세국씨(39)도 야간대학원에서 경영학을 공부한다.
그는 『은행 중간간부인 형님이 마흔을 넘기기 직전 신문방송대학원에서 PR광고분야를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은 것에 자극받았다』고 말한다.
매일 저녁 6시반∼7시경 서울 신촌의 연세대 캠퍼스에는 하교하는 대학생들틈에 등교하는 「늙은 학생」들 모습이 눈에 띈다.
경영대학원 110호 강의실. 정창영교수의 경제학 석사과정 「경제발전론」강의가 시작됐다.
『경제발전의 원천은 자본과 노동의 축적입니다. 후진국이 선진국의 기술발전을 따라잡으려면 법 제도 관행 등 사회적 성숙이 중요합니다』
나이가 지긋한 학생들은 기업 경제연구소 정부부처 은행 증권사 등을 일터로 둔 30대가 대부분.
올해부터 이 강의를 듣고있는 이선기씨(38)는 현역중령이다. 대전 계룡대에서 매주 월,화요일 강의를 듣기위해 왕복 8시간을 달리는 「기차 전철 통학생」이다. 대학졸업후 16년간 일에 파묻혀 살다보니 요즘 공부하는게 무척 재미있단다.
이씨처럼 기차통학하는 야간대학원생은 『서울역에서 늦은 밤 출발하는 기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줄달음치는 30대 중에는 늦공부 터진 지방학생이 많이 섞여있다』고 말했다.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의 1년짜리 「독서교육지도자 전문교육과정」의 40여 학생 대부분이 30대 주부다.학위코스 못지않게 학생들이 열성이어서 휴강한번 할라치면 항의가 빗발친다. 야간대학원 담당교수들도 웬만한 핑계로는 휴강을 엄두도 내지 못한다.
순천향대 이민규교수(36·신문학)는 『서울의 야간대학원에서 강의가 있는 날은 서울행 열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잔뜩 긴장하게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