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에세이]「아들과 함께 걷는 길」

  • 입력 1996년 12월 18일 20시 48분


내게 있어 아버지란 항상 공연히 무섭고 두려운 존재였다. 매를 댄다거나 결코 고함을 지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가 집안에 계시면 숨조차 크게 쉴 수 없었다. 아버지는 저녁에야 돌아오시는 분이었다. 하루 종일 논이며 밭에 나가 계시다가 저녁 노을을 등지고 논두렁 사이로 난 풀섶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시는 모습은 늘 지쳐보였으나 여전히 가족들을 긴장시켰다. 얘들아, 저어기, 아버지 들어오신다. 어머니의 이 한 마디는 형이며 누나들의 호들갑스럽던 하루가 마침내 끝났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식구들은 서둘러 창문을 닫고 등촉을 밝힌 뒤 마당으로 뛰어나가 정중하게 혹은 엄숙하게아버지의 귀가를 맞았다. 농사를 지어서 소출을 내는 일. 아버지에게 있어 그일 이외의 것들은 모두 「쓰잘데 없는 일」이었다. 계란 한 알, 토마토 한 개도 아이들의 입에 들어갈 건 정말로 없었다. 모두 장에 내다 팔 물건이었던 것이다. 그런일에 아버지는 철저하도록 가혹했으며, 그리하여 아버지란 정나미가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기는 해도 내게도 아버지에 관한 따뜻한 기억이 없지는 않다. 어느 여름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저수지 수문 아래로 내려가 된장이 매달린 그물을 던졌다. 얼마뒤 끌어올린 그물에는 수십 마리의 은빛 피라미들이 필사적으로 파닥거리고 있었다. 한여름 땡볕을 반사해 눈이 부실 정도였다.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어떠냐, 이걸 고추장에 졸여서 네 반찬을 하면 좋겠지. 평생 그때 그 여름날의 땡볕과 바람과 은빛 피라미와 아버지의 정겨운 말을 잊을 수는 없을 것 같다. 만일 어떤 아버지가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과 함께 대관령 굽이굽이 60리 길을 걸어 넘으면서 자연과 인생관, 꿈에 대해 긴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어떨까. 그아이의 일생에 그 일은 어떤 느낌과 색깔과 체온으로 남게 될까. 소설가 이순원이 그런 소설을 썼다. 제목도 「아들과 함께 걷는 길」(해냄 펴냄)이라고 지었다. 소설이라곤 하지만 실제로 있었던 일을 적은 것이다. 이순원의 고향은 강릉이고 강릉에 가려면 대관령을 넘어야 한다. 이순원은 지난 5월 초등학교 6학년인 아들 상우와 함께 그 고개를 걸어 넘었다. 올해 초 「수색, 그 물빛 무늬」라는 소설을 써서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이순원은 가족사의 내밀한 부분을 소설로 발표한 것에 대해 아버지에게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었다. 어느날 강릉의 아버지가 널 좀 봐야겠다고 했고, 이순원은 약간은 긴장된 마음으로 아들과 함께 대관령을 넘은 것이다. 가족사를 염치도 없이 써냈다고 야단이나 맞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고 있던 작가는 결국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을 확인하고 다시금 눈시울을 붉혔다는 것으로 소설을 맺고 있다. 「떡갈나무의 노란 손수건」모티브를 감동적으로 재구성한 솜씨도 솜씨지만 이 소설을 독자에게 한 아버지와 아들이 높고 먼 산굽이를 돌아내려가며 하염없이 무슨 얘긴가를 주고받는 멋진 장면을 상상하게 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만하다. 일제하, 해방후, 그리고 산업사회가 되었다는 지금까지 아버지는 늘 숨고 도망치고 희생당하거나 명퇴로 쫓겨날까 주눅이 드는 존재가 아니었을까. 하지만 아이에게 아버지란 존재가 일요일 낮 코고는 소리로만 기억되지 않게 하려면 이제라도 아이와 함께 하는 소박한 행사같은 것도 생각해봐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렇다면 이 책은 그런 사람들을 위한 하나의 시범 혹은 본보기랄 수 있을 것이다. 작가도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분들이 나와 아이가 대관령을 넘으며 나누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의미 있는 정담을 아이와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 라고. 구 효 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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