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설고 낯선 이국땅, 해외에서 살고 있는 교민 유학생 주재원들이 조국에 편지를 띄웠다. 그들의 편지에는 기대와 소망, 그리고 오랜 타향살이에서 배어난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 있다. 새해,97년을 설계하는 우리에게 그들은 무슨 소식을 전할까. 그들의 얘기를 시리즈로 엮는다.》
독일통일이 18세이던 나에게 다가온 첫 모습은 사투리였습니다. 밤에도 베를린 시내는 밀려드는 인파로 넘실거렸지요. 무너진 장벽의 현장을 직접 확인하려는 호기심에 찬 베시(Wessi)들, 처음으로 휘황찬란한 서베를린의 야경을 즐기려는 오시(Ossi)들이 서로 얽혀 밤이 늦을수록 흥분은 더욱 고조됐습니다.
장벽의 붕괴는 생활 주변에서도 곧 실감할 수 있었지요. 학교에는 동독에서 전학온 학생들이 하나 둘 늘기 시작했고 그중 요나스라는 친구와는 몇달간 함께 생활하기도 했어요.
그는 과거의 친구들과 여러 면에서 달랐습니다. 종종 『서독친구들은 너무 이기적』이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선생님에 대한 태도가 너무 고분고분 해서 「순종론자」라고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통일에 대한 논쟁은 지금도 언론에 끊임없이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수많은 경제전문가들의 진단과 정치인들의 약속, 그리고 통일이 몰고 온 여러 문제들에 대한 각인각색의 진단들…. 통일 당시의 예상과는 달리 최악에 이른 실업문제를 보면서 많은 시민들은 과거의 진단이 오류였음을 실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의 분단상태로 되돌아가자는 얘기는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양쪽 사람들이 분단이전의 「자연스런」 관계를 회복하는 데에 20년이 걸린다는 얘기도 있지만 이 역시 독일인들답게 묵묵히 받아들이는 모습입니다.
분단40년의 각종 차이를 극복하는 일을 독일인들은 「내적 통일」이라고 부릅니다. 이를 지켜보면서 나는 나의 「내면적 통일」을 생각해보곤 합니다.
독일에 살면서 한국통일에 대해 질문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평소 정치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던 나도 언제부턴가 두 나라의 통일문제에 대해 이것저것 생각해 보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통일은 독일의 통일보다 더 어려울까, 혹은 간단할까, 아니면 유사한 과정을 밟을 것인가.
다만 독일에서는 나와 비슷한 젊은 세대들이 정치현실에 대체로 무관심하다는 사실이 아쉽습니다. 독일인들 자신보다 외국인들이 독일통일 문제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과연 한국에서는 어떨까요.
첫 대목에서도 독일어 사투리 얘기를 했지만 마지막으로 독일어와 관련된 체험을 한가지 더 소개하고 싶습니다. 통독 직후 동독지역의 소도시를 여행한 적이 있지요. 요기나 하려고 간이음식점에 들어가 「유창한」 베를린 억양의 말투로 주문을 하자 주인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놀란 눈초리로 일제히 나를 주시했습니다. 마치 노랑머리 독일인이 북한의 어느 시골에서 능숙한 전라도 사투리로 떡볶이를 주문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김 인 호<독일 베를린 자유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