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동아신춘문예/중편소설]당선소감 및 심사평

  • 입력 1997년 1월 2일 20시 02분


▼ 당선소감=박자경 ▼ 바라기는 했어도 예상은 못했다. 그러나 가끔 건방진 나는 원고를 갖다 주고 와서 아무 연락이 오지 않을 거라 지레 절망하며 혼자 중얼거렸다. 『나 같은 사람이 소설 안 쓰면 누가 쓰나』 걸작을 자신하는 말은 아니다. 내가 오직 소설만 쓰면서 이승을 살고 싶은 사람이어서다. 그런 꿈을 가진 지 엄청나게 오랜 세월이 흘렀다. 사람 사는 모든 이야기가 소설이 될 수 있다고 무지몽매하게 달려든 적이 있다. 세상을 보다 모순 적은 곳으로 바꾸는 데 일조하지 않는 문학이란 구역질난다고 시건방을 떨던 때도 있다. 무지몽매하던 시절에는 아무거나 썼고, 시건방을 떨던 때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 아무것도 길러내지 못하는 황량한 시기를 오래도록 겪으면서 나는 뼈저리게 알아갔다. 밥 먹는 이야기든 지구 돌리는 이야기든, 천상에 있든 지옥에 있든 소설이 갖추어야 할 기본의 미속(美俗)은 있는 거라는 사실이다. 나는 작가가 되기에는 너무 속물이고 무식하고 경험도 없고 철학도 없다. 최소한 착하지도 않다. 그런 사람이 왜 이승에서 오직 소설쓰는 사람으로만 존재하고 싶은 것인가. 비극적인 수수께끼다. 내 인생의 짐이 내 소설에 실리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지금은 오그라졌어도 아주 조막손은 아닐 거라 믿고 길을 열어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린다. 나의 커다란 나무인 힘센 엄마께 박수를 쳐드리고 싶다. 겨울눈을 덮고 계실 아버지께도 잔을 올린다. △63년 서울 출생 △86년 숙명여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심사평=이문열, 권영민 ▼ 중편 부문의 응모작을 심사하면서 두 가지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하나는 중편소설이라는 양식의 특성에 대한 문제이며, 다른 하나는 소설의 새로운 서사 기법에 대한 문제다. 이같은 문제를 중시한 이유는 우리 문단에서 중편소설이라는 양식의 구분을 명확히 내세워 온 동아일보 신춘문예가 앞으로 중편소설 양식의 발전과 그 특성화를 위해 어느 정도의양식적 범주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본심에 오른 열 편의 작품 가운데에서 심사위원이 먼저 주목한 것은 중편소설로서의 작품의 완성도이다. 이 기준은 매우 복잡한 서사 원리를 전제하는 것이지만, 삶의 총체성에 대한 지향과 상황성의 극적 인식이 미묘한 조화와 긴장을 수반할 경우만 중편소설이 성공할 수 있다는 지극히 일반적인 기준을 적용해 본 것이다. 이 기준에 의해 「출라이 어쓰」(정수인) 「하얀빛」(신상미) 「삶의 무늬」(김인자) 「서로의 안부를 묻다」(강영숙) 「그 바다엔 등대가 없다」(김호) 「달에게」(박자경) 등을 먼저 골랐다. 이 가운데 「하얀빛」 「서로의 안부를 묻다」가 다시 제외되었다. 소설적 소재와 구성 방식이 기성 작가의 어느 작품과 유사한 느낌을 준다는 지적도 있었고 주인공의 성격화 방법에서 그 치밀성이 다른 작품보다는 부족하다는 점도 지적되었다. 당선작을 결정하는 순간까지 「그 바다엔 등대가 없다」와 「달에게」를 놓고 고심하였다. 「그 바다엔 등대가 없다」는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소재의 시류성을논외로 할 경우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 무리가 없다는 점, 사건을 해석하는 작가의 주관이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 해양문학으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된다는 점 등이 주목되었다. 그러나 지나치게 평면적인 서사성으로 인하여 긴장을 유지하지 못하고 있으며 행위의 동기 부여가 약하다는 점이 지적되었다. 「달에게」는 이념성의 공간에서 일상성의 공간으로 이동하는 소설적 상황 변화와 함께 주인공의 의식의 추이를 세밀하게 추적하고 있는 묘사력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야기의 전체 내용이 운동권 체험의 후일담처럼 읽혀질 수도 있다는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의 호흡이 묘사의 치밀성을 뒷받침하고 있는 점, 삶의 전체성에 대한 인식의 가능성을 놓치지 않음으로써 중편 양식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 등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선자에게 축하를 보낸다. 최종심에 오른 모든 분들에게는 분발을 당부드린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