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줄거리가 없다. 보는 관점에 따라 신체극 언어극 상황극 음악극 무용극 해체극 등으로 명명할 수도 있지만 딱히 어느 것이라고 고집할 수는 없다. 따라서 전체의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딱딱한 사변이 되기 십상이므로 차라리 이 작품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이 보다 이해를 높이는 일이 될 것이다.》
〈예언자 원숭이(이하에서 원숭이는 곧 사람이라고 바꾸어 읽어도 무방하다)―공연 전의 상황〉
어느 날 몇몇의 털 없는 원숭이(배우)들 앞에 미지신(?, 「미친놈, 지가 신의 아들」인 줄로 착각하는)원숭이 한 마리(작,연출)가 나타난다. 이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들을 교묘한 말솜씨로 미혹하는데, 그의 주장인 즉, 곧 세기말이 끝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데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하늘이 무너져 세상이 끝장난다는 것이었다. 물론 처음에는 이를 믿는 원숭이들은 없었다. 하지만 이 원숭이는 보통 원숭이가 아니었다. 보통 원숭이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일들에 대해 「썰」을 풀어대는데 난데없는 이야기들, 이를테면 원숭이의 기원, 원숭이 세계의 미래, 원숭이 혹성과 자연과 우주, 다른 원숭이들의 관점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 이 원숭이의 「구라」는 끝이 없었다. 그 중 압권은 원숭이의 본능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원숭이는 자유로운 상상과 우주의 근원 소자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한 손에는 두려움을, 다른 한 손에는 평안함을 쥐고 태어났다」는 이상한 「구라」였다. 곧이어 그는, 이 두려움과 평안함은 원숭이들이 만든 유형무형의 모든 것의 원천이라는 말을 했는데 이때쯤 몇몇의 원숭이들이 동요를 하기 시작했고 신드롬의 기미마저 보였다. 이를 놓칠세라 미지신원숭이는 원숭이들에게 몇 가지의 문헌들과 논문들을 학습시켰는데 그것들은 상당히 복잡하고 어려웠다.
학습 이후, 정신이 혼미해진 원숭이 몇 마리가 모든 원숭이들을 구원하는데 앞장을 설 사도가 되겠다고 나섰는데 그들은 이후 「표본 원숭이」라고 불렸고, 이들이 이후에 미지신 원숭이로부터 지시 받은 것은 정말 이상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었다.
〈네 마리의 표본 원숭이들―네 명의 배우들이 실행한 훈련〉
미지신 원숭이가, 이들 네 마리의 표본 원숭이들에게 내린 첫 번째 지시는, 사물이나 시간이나 상황을 면밀히 관찰하고 분석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모든 감각을 소멸시키고 예민하게 청각만을 사용하라든지, 시각만을 사용하라든지 또는 중력을 느끼라든지, 느끼지 말도록 하라든지 하는 이상한 훈련을 표본 원숭이들에게 시켰는데 이러한 훈련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의식이었지만, 의외로 표본 원숭이들의 감각을 발달시키는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미지신 원숭이는 두 번째로 언어와 바톤 제스처와 보디랭귀지 그리고 동공과 무게중심의 변화로 나타나는 마인드의 움직임 등을 해체 분석, 재결합 재분해 또는 색다르게 조합하도록 지시를 내렸는데 이 훈련은 상당히 까다롭고 어려웠지만 이 훈련 결과 네 마리의 표본 원숭이들은 상당한 정도의 자기절제와 조절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훈련의 다음으로 미지신 원숭이는 모든 일상 또는 상황을 분석해 보고 그리고 그 일상 또는 상황에 변화를 주면 어떤 결과를 얻는지 관찰해 보라는 지시를 표본 원숭이들에게 내렸는데, 이 지시를 수행하면서 표본 원숭이들은 자신이 일상 또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만이 아니라, 자신이 의도하는 바에 따라 일상 또는 상황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비로소 깨달았다. 표본 원숭이들에 의해 다른 원숭이들은 종종 극적인 경험들을 하게 되었는데, 이웃 카페 종업원 원숭이는 누군가가 자신을 열렬히 사모한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대머리 약사 원숭이는 웬 영계가 자신에게 반했다고 생각을 했고, 한 무리의 원숭이 떼는 살해현장을 보았다고, 또 다른 원숭이 떼는 임부의 출산을, 또 다른 원숭이 떼는 카사노바의 비애를 목격했다고 생각을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허구였다. 미지신 원숭이의 지시에 의해 표본 원숭이들이 만든 허구였다. 용의주도한 미지신 원숭이는 표본 원숭이들에게 이와 같은 재주들을 나쁘게 사용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고, 철저한 자기고백을 통하여 자신을 성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 다른 원숭이들을 모아 놓고, 네마리의 표본 원숭이들을 통하여 모든 원숭이들이 자기성찰의 의식을 할 수 있는 제사(연극)를 지내도록 하였다.
〈표본 원숭이들에게 포획된 원숭이들(연극을 구경하러 온 관객들)―공연 상황〉
―나원 참, 구경온 원숭이들은 자신이 관찰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겠지만 원숭이 극장에 앉아있던 원숭이들은 참으로 철저하게 관찰당할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날 무대에 있었던 네 마리의 표본 원숭이들과 객석에 앉아 있던 그 뻔뻔한 원숭이(숙달된 상황 조작자)들은 점입가경의 경지로 훈련을 받은 전문적인 원숭이들이었으니까….
제사가 시작되기도 전에 원숭이들은 각각의 착각에 빠져들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반했다든지, 누군가가 비정상이라든지, 극장에 도둑이 있다든지, 돌발적인 이상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든지 하고 생각하는 것은 표본 원숭이들에 의한, 포획된 원숭이들의 착각일 뿐이다. 하지만 그것을 바로 파악하기는 힘들다. 급작스런 사건들이 돌발적으로 계속해서 일어나는 가운데 제사(연극)는 시작되고 그것은 한가지의 목적을 향하여 계속된다. 신을 향한 제의(祭儀)가 아닌, 털 없는 원숭이(인간)를 위한 제의, 인간의 두려움과 평안함에 대한 제의, 인간과 자연과 우주에 대한 제의가 이 제사(연극)의 목적이자 주제이다.
표본 원숭이들은 자신들이 훈련을 통하여 습득한 능력으로 서서히 철저하게 포획된 원숭이들을 해체해 나간다. 언젠가 페터 한트케라는 원숭이가 제사(연극)를 부정하는 방법으로 시간과 공간과 인지 인식을 해체해보려 했었던 적이 있었지만 그것은 난해했고 자기부정적이었으며 너무 기교에 치우쳐서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만난 해체전문가들은 앵무새처럼 연출자의 생각을 읊는 천치들이 아니다. 그들은 현재 존재하는 모든 음악(현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형식의 음악들―현대음악 팝 재즈 컴퓨터음악 등)과 조명효과 공간역학 등을 자신의 의사대로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관객들을 분석하고 해체하고 재창조 하려든다. 그들은 뭔가를 보여주는 자들이 아니라, 뭔가를 행하고 만들어 가는 자들이다. 그들은 말이나 신체나 상황을 꾸미지 않는다. 그들은 대단히 직설적으로 말하고 직접적으로 행동한다. 그들은 말을 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고 노래를 부르거나 춤을 추거나 다양한 상황을 만들거나 한다. 이들의 모든 행위의 우위적(優位的)진실은,언어보다는 바톤제스처에,보디랭귀지에 그리고 동공이라든지 안면근육이라든지 호흡에,최종적으로마인드에있다. 이들의 생각은 자신들의 마인드를 털 없는 원숭이(인간)가 가진 최상의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포획된 원숭이(관객)들에게 전하려는 것이다.
무엇을?
『당신들은, 여러분은 메시지를 전해 들었습니다. 여러분은 위대합니다. 여러분은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은 자유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행복하게 하였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을, 여러분 자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신이라고 말했습니다. 우주라고 말했습니다』
이와 같은 말은 인간이 가진 모든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총동원하여 전달하려는 것이, 이들(미지신 원숭이와 표본 원숭이들)의 목적이고 또한 이 연극의 목적이자 주제이다.
「새로운 세계관을 위한 현대적 제의」라 이름 붙인 이 작품은 의외로 이처럼 단순한(?) 목적만을 가지고 있다.
<이 헌>